2008. 6. 2. 21:32

D+7 070322 thu 빅토리아알버트 워터프론트에서 영화를 보다

어제 하늘이 심상치 않더니 구름이 잔뜩 끼었다.
바닷가라 그런지 여기는 구름이 하늘에 있는게 아니라 땅에 아주 가까이 있다.
마치 안개 같다. 안개에 갇혀서 답답하다.
처음 이틀 분위기 익히느라고 시내에서만 놀때는 날이 맑더니, 이러다가 테이블 마운틴에도 못 올라가게 생겼다.
안내책자에 '날씨가 허락한다면...'이라는 말이 얼마나 많던지...
아침을 먹으며 신문일기예보를 보니 토요일까지 날씨가 흐릴 것이라고 한다.
또 이 도시에 올 일이 생길까? 이번이 아니라도 또 테이블 마운틴에 올라갈 기회가 있을까?
이게 여행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이 순간이 지나면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보츠와나 대사관(8 Riebeeck st. Southern life center) 에 비자를 찾으러 갔다.
여직원은 오늘 더 피곤한 얼굴로 앉아있다.
내 얼굴을 보고 금방 여권을 주긴 하였다.


비자피 35랜드를 거슬러줄때까지 기다려야했다. 우리돈 오천원 정도인데...
기다리면서 찍어보았다. 물론 그 여직원 없을때.
결국 10랜드 정도 모자라게 받은 것 같았다. 그래도 비자 받았으니 내가 참아야지.
밖에 나오니 비가 오고 있다. 그것도 꽤 많이 내린다.
아, 여행자는 비가 오면 할 일이 없어지는데...
비를 뚫고 어메리칸 익스프레스에 가서 여행자 수표를 바꾸고 또 비를 피해가며 노매드에 투어비 내러 갔다.
한국인 인턴 사원을 만날 수 있었는데 한국 떠난지 일주일밖에 안 되었는데 한국말 하는것이 낯설고 신기했다.
여기서 3년동안 공부했단다. 케이프타운에 한국 사람 많다는데 왜 나는 한 명도 못 만났지?
노매드 사무실의 뜬금없는 한글 금연 표지.
비자도 다 받았고, 투어비도 냈고 이제 일요일 오전 8시에 출발만 하면 된다.(그러나 이게 끝난 것이 아니었다.)
기분이 좋아져서 아까 한국인이 말해준 빅토리아 알버트 워터프론트에 가보기로 했다.
어디선가 읽은 '예전에는 워터프론트까지 걸어가는 것이 위험하다고 여겨졌으나 요새는...'라는 구절이 기억나고,
그 인턴사원도 걸어가기에는 멀고 메인로드에 가서 버스를 타고 가라고 했으나
메인로드는 어디며 또 버스는 어디가서 탄단 말이냐,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항구다운 바람 많이 부는 큰 길이다. 인적이 좀 뜸해서 약간 무섭기도 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나타낸 두명의 아줌마 여행자.
배낭커버까지 씌우고 물병은 꽂고 우산을 들고 씩씩하게 걸어가고 있다. 아마 독일 쪽 쯤이 아니었을까.
그 뒤를 졸졸 쫓아갔다. 음, 역시 여럿이 움직여야 한다니까.
빅토리아 알버트 워터프론트는 바다 옆에 면한 코엑스 몰 같은 곳이었다.
쇼핑센터와 레스토랑과 극장이 모여있는 복합 문화공간.
우선 점심을 먹고 다음 스케줄을 생각해보자. 비싸보이는 레스토랑은 모두 패스.
부두에 바로 면해있는 피쉬와 칩스를 파는 셀프서비스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생선 튀김과 오징어 튀김(small hake and small calamari and salad)을 시켰다.
바다를 바라보며 분위기 잡고 먹어볼까나? 참 사진 한 방 찍어주고.
다음 순간 먹어주려 하는데 저 갈매기가 가장 큰 생선튀김 조각을 채갔다.
오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노우!!!!!!! 생선은 거의 그거 하나밖에 없었는데...
거의 눈물이 나올뻔했다, 갈매기에게 점심을 뺏기고서. 주변의 사람들도 아주 안 되었다는 눈빛을 보내주었다.
생선튀김...맛있었는데...저 부스러기까지 맛있었는데...저 큰 거는 얼마나 맛있었을까?
바로 이놈이었다. 잡아먹을수도 없고 때려줄 수도 없고...
비도 오고 갈 때도 없고 할 일도 없다. 점심을 충분히 못 먹어서 돌아다닐 힘도 없다.
영화나 한 편 볼까?
모로코 사막을 배경으로 해서 브래드 피트가 나온다고 해서 바벨을 골랐다. 가격은 40란드, 우리돈 5000원 정도이다.
설명서를 대충 읽어 사막에서 조난당하는 어드벤처 영화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브래드 피트와 부인은 사막을 그룹투어로 여행하다가 부인이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을 맞는다.
버스는 그들만 남겨두고 출발하고 아무도 도와주러 오지 않는 사막의 마을에서....
또  미국에 남아있던 아이들과 멕시코인 가정부는 멕시코 국경 허허벌판에서 길을 잃고... 하는 등등의 무서운(?)영화였다.
나도 여기, 낯선 곳, 익숙한 나의 세계와 지구 반바퀴만큼 떨어져 있는 곳에 혼자, 있다.
내가 여기서 무슨 일을 당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것이며 한국에 있는 내 가족들에게 그 소식조차 전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에고, 편하게 한국에 있을걸, 이 길을 왜 시작했던 것일까?
이렇게 멀리 와 있다니...
영화가 끝나고 나오니 5시였다. 집에는 어떻게 가야하지? 영화 보고나서 마음이 무척 불안했다.
택시를 타고 갈까 했으나 아직 환하고 저 앞에 말로만 듣던 미니버스가 있다.
퇴근하는 듯한 흑인들이 줄지어 탄다.
"Excuse me, Is this to the city center?"
"City? Yes"
"How much is it?"
"Three rands"
에라 모르겠다. 택시도 위험할 것 같고 버스비는 싸네, 타버렸다.
전부다 흑인이고 내 옆의 아저씨만 서류가방 든 백인이다.

어, 내가 왔던 길이 아니쟎아. 그 시티가 시티센터가 아니라 절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cape flat 아니야?
큰일났구나, 큰일났어. 내려달래서 택시 잡아야 하나? 아까 거기는 택시 많던데 이 길에는 하나도 없네.
날은 어두워지고 차들은 헤드라이트를 켜고 있다. 벌써 셔터를 내린 상점도 있다.
버스비를 뒤에서 앞으로 사람들이 전달해준다. 거스름돈도 전달 되어서 적당한 위치에 앉은 사람이 나누어 준다.
나는 그 돈의 흐름에 끼여들지 못하고 3란드를 손에 땀이 나도록 쥐고 있었다.
차가 섰다. 여기는 알 것 같다. 기차역인데 전에 지나가던 길의 반대쪽인 것 같다.
3란드를 기사에게 주고 역 안으로 들어갔다. 역을 가로지르면 될 것 같다.

그런데, 아, 그 흑인들의 물결이란...! 이 시간에 모두들 기차타고 퇴근하는 모양이다. 퇴근시간의 신도림역 뺨친다.
빨리 걸어야 돼, 아무하고도 눈 마주치지 말고, 그런데 이 방향이 맞는거야? 사람들이 모두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저기 금발의 키 큰 여행자도 어디로 갈지 몰라 헤매고 있군. 잘못 들어왔는지 불안한 걸음이 무지 빠르다.
겨우 어떤 여자한테 숙소가 있는 long street 로 가는 방향을 물었다.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 것 같단다.
역 밖으로 빠져나왔다. 허름한 노점들과 길가에 앉아있는 사람들, 바람에 쓰레기가 날리고 줄지어 있는 택시들.
여기서는 택시도 위험할 것 같다. 날은 어두워지고 사람들은 뭐에 쫓기듯이 빨리 걸어가고 있었다.
모퉁이에 씌여있는 거리 이름을 발견하고 살짝 지도를 꺼내 보았다. 한 블록만 더 가면 아는 길인 것 같다.
그래, 여기서부터는 익숙한 길이다. 다행이다. 그런데 아까 낮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무섭다, 무서워.
밤에는 시내 중심가를 돌아다니면 안 된다더니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아주 빠른 걸음으로 걸어서 겨우 숙소 도착, 온 몸이 땀으로 젖어있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많이 피곤해져서 슈퍼에서 바나나 네 개 사다 저녁을 때웠다.
슈퍼 앞에 껄렁해 보이는 흑인들이 서있다가 말을 건다. 절대 돌아보지 않았다.
아직도 겁에 질려 있군.
난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흑인들이 모여있으면 무섭다.
언론 등에서 간접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고, 이 나라에서 사회경제적 여건상 흑인들이 저지른 범죄가 더 많은 것이고.
알게 모르게 박혀있는 편견이 이 여행이 끝날 쯤에는 어떤 결론에 도달해 있을까?
다음부터는 꼭 일찍일찍 다녀야겠다. 또 돈 조금 아끼지 말고 필요할때는 택시를 타야겠다.
그런데 버스비가 3란드라니 정말 싸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