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3. 21:52

팍세 여행의 마지막 밤

슬리핑 버스는 각각 시차를 두고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우리가 탄 버스는 제일 늦게 출발했다.

도시의 불빛은 어느새 사라지고 주위가 캄캄해졌다.

버스가 서 있을 때는 누워 있는 게 그렇게 편하더니 움직이기 시작하자 커브 돌면서 몸이 쏠리고 덜컹거려서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남는 베개와 이불로 최대한 자리를 편하게 만든 후에 겨우 잠이 들어서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갑자기 '쾅' 하는 소리가 나면서 심한 충격이 차체에 가해졌다. '나무에라도 부딪힌 걸까? 그런데 그냥 가도 되나?'비몽사몽간에 생각을 했는데 몇 십 미터 더 가서 버스가 멈췄다.

정신을 차려보니 바로 내 자리 유리창에 금이 가 있었다.

바깥으로 나와보니 이렇게...

버스 앞쪽 유리창에도 금이 가 있었다. 밤공기는 무척 차가웠다.

이 때가 새벽 두 시가 좀 넘었는데 이 때부터 하염없이 기다리기 시작, 다른 버스가 온다는 얘기도 있었으나 확실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끔 버스가 지나갔으나 승객을 태우려고는 하지 않았다. 

내 자리에는 유리 파편이 흩어져 있어 아버지 침대에 같이 앉아있다 누웠다 시간은 참 지루하게 흘러갔다.

지루한 밤이 끝나고 날이 밝았다.

오, 조금만 세게 부딪쳤더라면 유리 파편 때문에 얼굴이 피투성이가 될 수도 있었겠다. 더 세게 부딪쳤더라면...

자리 많이 비었다고 좋아했는데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앞유리도 떨어져 나가기 일보 직전이다.

이 트레일러와 부딪쳤던 것.

8시가 지나자 경찰이 와서 사고 경위를 조사했다. 그리고 버스는 다시 비엔티안을 향해 출발했다. 

다른 버스 같은 건 애초부터 올 리가 없었고 경찰이 출근하기를 기다린 것이었다.

화장실도 못 가서(버스 안 화장실은 애초부터 너무 더러웠다) 아랫배는 빵빵해 오는데 배는 고파서 버스 탈 때 준 카스테라는 꾸역꾸역 먹고 비엔티안까지는 어찌나 오래 걸리던지...이렇게 힘들게 여행한 적이...음...예전에는 많았다, 요새는 없었다. 다음부터는 비행기 타고 다니고 싶다.

다섯 시간이 지나 오후 한 시에 비엔티안 북부터미널에 도착하였다. 뚝뚝을 타고 집에 와서 샤워하고 출근하였다. 

 

 

 

 

 

(밤에 이동하여 시간을 아끼려다 몸은 몸대로 힘들고 반나절의 휴가만 날렸다고 이 당시에는 생각하였다. 하지만 아버지와 함께 하였던 이 날의 기억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하다는 것을 나는 지금 안다. 나의 최고의 여행 파트너였고 포스팅마다 첫 댓글을 달아주시던 마이 대디와의 마지막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나신 대디, 이제 그 곳에서 또 어떤 여행을 꿈꾸고 계실까?)

<Patagonia, Grey Glacier, with my beloved Daddy,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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