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3. 13. 20:33

하노이 1일차, 하이랜드 카페와 롯데 센터

오랜만에 고샘이랑 반까이로 멕시코 음식을 먹으러 갔는데 월요일이라 문을 닫았다. 다른 선택이 없어 바로 앞에 있는 베트남 음식점 PHO 101에 가서 쌀국수와 스프링롤을 시켰는데 쌀국수 국물이 굉장히 깔끔하고 맛났다. 그 동안 라오스에서 수도 없이 먹었던 쌀국수 중 상위에 드는 맛이었다.

- 베트남 국수가 더 맛있는 것 같아.

- 베트남 음식이 맛있긴 하지, 하노이에 가면 맛있는 걸 엄청 많이 먹을 수 있어.

그렇다면 하노이에 한 번 가볼까? 이번 주가 세계 여성의 날 대체 휴일로 월요일에 쉬니 (3월 8일인데 일요일이라 월요일에 쉰다) 금요일밤에 출발해 월요일에 돌아오면 되겠다.

스카이스캐너로 항공권을 검색하니 베트남 항공이 250불 정도에 뜬다. 싸지는 않구나, 그래도 가야지. 요새 비엔티안의 날씨는 낮에는 37~38도에 육박한다. 우리집은 남향과 서향으로 하루종일 햇볕이 드는데다 꼭대기층이라 낮에는 집에 있지 못할 정도이다. 3일 내내 어떻게 집에 있나 걱정했는데 하노이 날씨를 검색하니 22-29도. 그래, 이번 여행 컨셉은 피서다.

집에와서 베트남 항공 사이트로 검색하니 항공권 가격이 180불이어서 당장 결재하였다.

 

옆동네 가는 기분으로 짐을 대충 싸고 여행 내내 읽을 책 세 권을 가방에 넣고 금요일 오후에 왓타이 공항으로 출발.

너무 일찍 도착한데다 배도 고파서 평소 안하던 호사를 부려 3층 뷔페에서 저녁을 먹었다. 89,000킵(11불)으로 나름 충실한 음식을 먹을 수 있고-와인도 무제한-앉을 곳이 별로 없는 공항에서 시간을 떄우기도 좋다.

 

8시가 조금 넘어 출발한 비행기는 한 시간 만에 하노이 공항에 닿았다. 도착 전 기장 멘트에 비가 약간 오고 16도란다. 16도!!! 그냥 입던 반팔 티셔츠에 에어콘 바람을 막기 위한 가디건만 갖고 왔는데 추울 것 같다. 그런데 탑승교를 지나는데 공기가 시원하고 상쾌했다. 우선 당장은 살 것 같았다.

호안 끼엠 호수 주변의 'Golden Legend Hotel'을 예약하고 공항 픽업 서비스를 부탁해 두었다. 예전에 무거운 배낭 메고 낯선 공항에 떨어져 제일 싼 방법을 이용해 시내까지 나가느라 고생했던 적이 많았는데 이제 돈 좀 쓰고 편하게 간다.

내 이름을 들고 있는 기사를 만나 공항을 빠져나오는데 새로 지은 공항이 번쩍번쩍 한다. 시내까지 한참 달리는 길도 고속도로를 새로 깔은 듯 쭉쭉 뻗어 있다. 아, 라오스는 언제 이렇게 되지? 아니, 이렇게 꼭 돼야 해?

 

열 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시내로 들어오니 차가 많이 막혔다.

골든 레전드 호텔 방 모습. 저 창가에 놓인 의자에 앉아 책을 읽으리라고 선택한 호텔이었는데 매일 나가 돌아다니느라고 막상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은 얼마 안 되었다. 

창 밖을 내려다보니 잎 떨어진 나뭇가지가 무성하다. 여름에는 온통 푸른색일 것 같다. 

망고 한 개가 얌전히 놓여 있고 깎아먹으라고 칼까지 준비되어 있다. 다음날 출출할 때 깎아서 잘 먹었다. 다시 채워주나 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쌀쌀해서 따뜻한 이불 속에서 빠져나오기 싫었다. 버틸만큼 버티다 나와서 창밖을 보니 베트남 특유의 폭이 좁은 건물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우산도 안 가져오고 비를 맞고 다닐 방수 잠바도 없는데 어쩌나.

우선 아침 먹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침 식사는 20미터쯤 떨어져 있는 골든 다이아몬드 호텔에서 한다. 몇 가지 간단한 음식이 뷔페로 차려져 있고 달걀 요리, 베트남 국수, 샌드위치 등은 무제한으로 주문해서 먹을 수 있다. 베트남 특유의 진하고 초콜렛 향기가 나는 커피는 너무 독했다.

호텔로 돌아가는데 저 쪽 길에 딱 보이는 것은 등산복 가게. 'Made in Vietnam'이라는 간판 아래 노스페이스 같은 상표의 등산복과 배낭을 팔고 있었다.  공장에서 음성적으로 흘러나온 상품을 파는 곳 같은데 품질은 그야말로 노스페이스처럼 보였다. 바람막이를 하나 사서 입으니 세상이 따뜻해졌다. 나중에 등산 갈 때 입으려고 내피가 달린 등산잠바도 하나 샀다.

등산복 가게에서 거스름돈으로 준 베트남 돈과 라오 돈. 베트남 동 환율은 1달러=21,000동으로 숫자가 무척 크다. 라오스 돈에는 독립 영웅 카이손이, 베트남 돈에는 호치민 사진이 들어있다. 나중에 알고보니 베트남 지폐는 이것말고도 50만동, 20만동, 5만동, 2만동 등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방수 잠바 입고 모자 푹 눌러쓰고 이슬비 내리는 거리로 나섰다. 하노이 시민의 휴식처라는 호안끼엠 호수로 향하는 중.

구시가지 골목골목마다 기념품 가게와 음식점, 카페 등이 있어 돌아보기 재밌는데 보도에 주차되어 있는 오토바이 때문에 피해서 걸어다니기 힘들다.

어, 라오스에 있는 조마 베이커리가 여기에도 있다.

대충 걷다보니 나타난 대성당.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세웠다는데 음...프랑스의 향기가 나는 것도 같다.

오토바이 탄 사람들이 이 앞 광장에 잔뜩 몰려 있었고 체육복을 입은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애들 데리러 온 걸까?

세련된 가게들 사이에 남아있던 한 칸 짜리 이발소.

전에 하노이 잠깐 스쳐갔을 때에는 오토바이가 굉장히 많고 시내가 무척 복잡하다는 인상이었는데 토요일이어서 그런지, 이 쪽이 그런 동네인지 한가한 길이었다.

길이 잘 정돈되어 있고 오토바이보다 자동차가 많고 관광용 골프카 같은 것도 돌아다니고 있었다. 

호안끼엠 호수. 비 안 오면 한바퀴 돌면서 벤치에 앉아서 쉬어가도 좋겠지만 오늘은 안 되겠다.

호숫가의 멋진 카페 야외 테이블도 비에 젖어가고 있다.

호수의 남쪽 끝에서 하이랜드 카페와 씨티은행 ATM이 있다는 북쪽을 향해 걸어가는 중.

베트남의 스타벅스라는 Highland 커피숍 발견. 등촌 샤브 칼국수도 있네.

일층 씨티은행 ATM에서 현금 인출을 시도했으나 하도 오래만에 썼더니 비밀번호 오류로 잠겨버렸다.

커피나 한 잔 하고 호텔로 돌아가 환전을 해야겠다.

카페 안은 생각보다 어두컴컴했는데 베트남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테라스에 앉고 싶었으나 비가 오고 차 소리가 시끄러워 안쪽에 앉았다. 쟤 발 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베트남의 대표 커피인 카페 수어다를 시켰다. 밑에 연유를 깔고 커피잔 반쯤 진한 커피를 담아주는데 정말 독하다. 한 모금 마셨는데 카페인의 기운이 머리끝까지 느껴지고 속도 살짝 쓰린 듯했다. 아침 식사 때의 커피와 이것까지 오늘밤에 잠 못 잘 것이 분명해 보였다. 


호텔에 돌아와 1달러=21,000동의 환율로 100달러 환전을 하고 점심을 먹으러 유명한 베트남 음식점 꽌 앙 응온(Quan an Ngon)으로 향했다. 체인점으로 여러 군데가 있는데 구글 지도에서 제일 가까운 곳을 찍어서 갔다. 

정겨운 골목길.

삿갓을 쓰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 

음식점 도착.

가운데 넓은 홀이 있고 빙 둘러서 오픈 주방이 설치되어 있다. 

내륙에서 왔으니 새우 구이를 시키고(7000원 정도),

유명하다는 분짜(2500원)를 시켰다. 구운 고기를 묽은 소스에 담갔다가 국수와 함께 싸먹는 요리이다. 고기는 불맛이 나서 맛있었는데 채소를 너무 조금 주고 내가 좋아하는 매운 고추가 없어 살짝 달고 느끼했다. 

베트남에서 먹는 베트남 음식보다 라오스에서 먹는 게 더 맛있는 것 같다.  


밥 먹고 택시를 잡아타고(3500원) 향한 곳은 롯데 센터. 쇼핑몰 없는 동네에 살다보니 어디 가면 쇼핑몰만 찾아다닌다.

오, 번쩍번쩍한 실내가 한국이랑 똑같다. 

옷은 베트남 취향이 많았던 것 같은데.

아티제 빵집도 있는데 가격은 한국이랑 비슷한 것 같아 패스.

꼭대기층까지 쭉 둘러보고 내려가는데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어디서 많이 본 익숙한 얼굴을 만났다. 

-아니, 선생님, 어떻게 여기에...?

-넌 라오스에 있는 거 아니었니?

수련 시절 제일 가깝게 모시던 은사님인데 볼일이 있어서 오셨다가 저녁 약속 전에 잠깐 들르셨다고.

What a small world!!!

이제 높은 자리에 올라가셔서 뵙기가 어려운데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너무 반가웠다. 

이 우연한 만남 하나만으로도 하노이에 오길 잘했다는 결론. 

선생님과 작별 인사를 하고 지하 슈퍼로 내려왔다. 두리안은 컸지만 안 익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다시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와 호텔 리셉션에 주변에 맛있는 곳이 있냐고 물으니 바로 가까운 곳에 유명한 쌀국수집이 있다고 한다. 

Ly Quoc Su 거리 10번지에 있는 Pho 10 쌀국수집. 

맛집 답게 빈 자리가 없을 정도. 합석을 해서 대충대충 앉는다. 

메뉴는 간단하게 테이블에 붙어 있다. 보통 쌀국수 한그릇이 2200원 정도이니 라오스랑 비슷하다. 

라임하고 고추 썬 것이 테이블에 놓여있다. 

잘 익은 고기가 들어간  Chin 한 그릇 시켰다. 라오스 쌀국수는 국물이 진한데 이건 그것보다는 가볍고 상큼한 맛이다. 내 국물 취향은 베트남 국수인데  흐물흐물한 쌀국수여서 쫄깃한 국수를 좋아하는 내 취향엔 조금 아쉬웠다.  

야시장에 갔더니 떡볶기를 팔고 있었다. 한 컵에 천원, 모양은 제대로인데 사 먹지 않아서 맛은 모르겠다.

한국 상품과 문화가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많이 퍼져 있는 것 같았다. 심지어 동네 구멍가게에서 빙그레, 롯데 아이스크림을 팔았다.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많은 사람들에 의해 한국 문화가 퍼져나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하노이에서 첫 날이 저물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