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7. 30. 23:02

D+30 070414 sat 잠비아 쪽 빅토리아 폭포,한국인을 만나다.

어제 시내를 돌아다니다 성당을 발견. 토요일 아침 미사에 갔다.
성당은 모든 이에게 열려 있어야 할 공간 같은데 큰 문은 잠겨있고 쪽문으로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사람은 별로 없고 모두(!!!) 흑인이었다, 나 빼고.
나는 더워서 반팔 차림인데 흰 머릿수건에 스웨터까지 걸친 아주머니들.
맨 앞에 앉은 5명의 아주머니들이 반주도 없이 성가를 시작하는데 멋졌다. 너무 멋졌다.
뱃속에서 울려나오는 듯한 목소리, 일반 신도들이 따라부르는데 남자, 여자 목소리가 어우러지고 가끔 화음도 넣고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스타일이었지만 어디서도 느낄 수 없었던 감동을 느꼈다.
아프리카인은 목소리와 음감을 타고 나는 것 같다.
미사는 영어로 진행되었는데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고 성체를 포도주에 찍어서 먹여주는게 신기했다.
신부님도 흑인인데 잘생겼다. 처음에는 흑인이 다 똑같게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잘생긴 얼굴은 알겠다.
어디나 신부님들은 잘 생긴 것 같은데 총각이라서 그런가? ㅋㅋ
카톨릭은 워낙 수줍은 종교인지 나에게 말 한 마디 거는 사람이 없다.
현지인을 만날 수 있으리란 기대를 갖고 성당에 가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시내 전화방에 가서 루사카의 차차차백패커스에 전화해서 싱글룸을 예약했다.
20일 넘게 텐트와 도미토리에서 지내다 보니 혼자만의 공간이 그립다. 25불이라니 좀 비싸군.
나름대로의 원칙 중 하나, 30불 이하면 싱글룸에서 잔다. 도미토리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 신경쓰이는 것도 있지만 내가 방해가 될까봐 너무 조심스러워서 지내기가 힘들다. 남을 배려하는 것이 몸에 밴 동양여자이다보니...

10시에 졸리보이스에서 폭포로 가는 픽업버스가 있다. 물론 공짜.
사람이 많아 자리가 모자랐는데 난 혼자이다 보니 나중에 2명이 한 자리에 낑겨 탄 사람들을 내리게 하고 탈 수 있었다.
2명이 한 자리에 타면 경찰에 걸린다고 기사 아저씨가 내쫓고 나를 태워준 것이다.
혼자라 좋은 점도 많다. 어디나 끼여들 자리는 있는 법이다.
잠비아 쪽에서 본 폭포.
짐바브웨 쪽은 폭포를 한꺼번에 더 많이 조망할 수 있는데 잠비아쪽은 폭포위에 놓인 다리도 건널 수 있고 국경을 따라 걸을 수도 있다.
어제와는 달리 젖을 각오로 대충 걸치고 왔다. 카메라와 귀중품이 들어있는 가방은 비닐봉지로 감싸고.
인도 관광객이 의외로 많은데 사진 한장 같이 찍자고 한다. 내가 신기한가?
혼자 돌아다니게 되니 셀카를 찍을 여유(?)도 생긴다.
폭포 위 다리, 건너려고 시도하다가 엄청난 물보라가 쏟아지길래 포기.
강줄기를 따라 이런 길이 나 있다.
한 쪽 옆은 저 철망 너머로 바로 국경. 저리로 들어오면 입장료를 아낄 수 있었을 텐데.
잠비아 쪽 입장료는 40000쿼차. 10불 정도로 짐바브웨의 반값이다.
한 쪽 옆은 절벽 아래 강물. 이 지점 너머로 가지 말라고?
제정신으로는 물론 갈 수 없지만 뭐 가드레일 같은 거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모든 여행객들이 제정신이라고 생각하면 안 될텐데.
저 다리 옆까지 절벽을 따라 걸어가는 것이다. 아무도 없어서 좀 무서웠다.
헬리콥터를 타고 폭포를 조망하는 액티비티도 있다.
이 사진을 찍고 돌아서는데 손에서 카메라가 미끄러져 떨어졌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액정이 까맣다. 어, 이거 고장난 거야?
이 시점에, 아프리카에서 고장이 나면 어쩌나? 애프터서비스를 받을 데는 없을 거고 새로운 걸 살 만한 곳도 당연히 없을 것이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도록 가슴에서 열이 치받아 올랐다. 앞으로 아프리카 여정 중 사진을 찍을 수 없단 말인가?
몇 번 사진기를 돌려보고 자세히 들여다 본 후 문제점 발견. 렌즈 뚜껑이 카메라를 켜면 저절로 열리는데 그 잠김쇠가 고장난 것 같다. 뚜껑이 닫힌 상태에서 사진을 찍어서 까맣게 나온 것이다. 렌즈 뚜껑이 카메라 움직이는 방향대로, 중력에 따라 열렸다 닫혔다 한다.
이런.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빅토리아 폭포 오솔길에서 혼자 카메라와 씨름한 결과 나름대로 렌즈뚜껑 열고 닫는 방법을 알아내었다.
설명하기는 좀 어렵다. 이후 카메라 고칠 기회는 영영 오지 않았고 여행 내내 사진 찍기를 부탁하면서
'it's broken' -이거 고장났어요.하고 작동방법을 보여줘야 했다. 아직도 카메라는 그 상태.ㅎㅎ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입구로 돌아와 버스를 기다리는데 어떤 동양남자가 하이 한다. 나도 하이.
-Where are you from? 내게 묻는다.
-Korea
-저두 한국에서 왔어요.
아프리카 여행 25일만에 처음 한국 사람을 만났다.
외대 아프리카어과 학생으로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고 있는 김동은군.
앞으로 짐바브웨를 거쳐 케이프타운까지 내려갈 거라고.
오랜만에 한국말을 마음껏 하니 얼마나 시원한지. 같이 점심먹으면서 한참을 얘기했다.
동은 군 말로는 잠비아는 탄자니아보다 훨씬 깨끗하고 좋단다. 잠비아 수도 루사카에서는 거의 감동했다고 한다.
다르에스살람에서는 꼭 YWCA에 묵으라고 하고 여러 정보를 주었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얼마나 일을 느리게 하고 답답한지 등등 진짜 아프리카 생활중 힘든 점 등 재밌는 얘기를 많이 해주었다.
동은 군은 졸리보이스에 자리가 없어서 Fawlty tower 에 묵고 있는데 졸리보이스 구경하고 싶다고 해서 같이 숙소로 돌아왔다.
어제 같이 픽업 버스를 타고 왔던 일본인 나우가 첨 보는 동양남자와 얘기하고 있다.
날 보더니 이 친구가 한국 남자란다. 오호, 이거 오늘 한국인 복 터졌다. 파티라도 해야겠는걸.
맥주와 쥬스를 마시며 파티중. 왼쪽이 김동은 군. 가운데가 이상근군.
이상근 군은 호주에서 워킹 홀리데이 후 태국, 베트남등을 거쳐 6개월간 여행중이란다.
케이프타운에서 나미비아 빈트훅 가서 사막 투어하고 넘어왔는데 어제 빈트훅에서 카메라를 소매치기 당해서 상심하고 있는 중.
카메라가 고장났을때 내 심정을 생각해 보면 카메라를 잃어버리면 정말 큰 타격일 것 같다. 그동안 찍은 메모리카드도 같이 분실했다니.
나름 여행 베테랑으로 주로 현지인을 사귀어서 돈을 아끼는 방법을 쓰는 듯했다.
픽업부탁 전화를 늦게 해서 25불 픽업 패키지(픽업, 2박 도미토리, 2번의 저녁식사, 맥주 한병)를 이용 못해 억울해하고 있었고.
앞으로 북쪽으로 올라가는 나와 루트가 같으니 어디서든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모두들 오랜만에 한국말 하는 처지라 밤 아홉시 넘어까지 수다를 떨다 동은군은 Fawlty tower 로 돌아갔다.
(한국에 돌아와서 메일로 연락해보니 교환학생 마치고 돌아와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짐바브웨 환율 때문에 엄청 고생했다고.)
내일 아침 일찍 루사카 가는 버스를 타야 해서 상근군에게도 인사를 했다. 어디서 만나던 못만나던 여행 잘 하라고.
가계부와 일기 쓰기, 다시 혼자 여행하는 사람의 자세로 돌아왔다.
오늘 오후에는 리빙스턴 뮤지엄 가려고 했으나 사람들을 만났으니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즐거운 마음으로 내일 루사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