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5. 7. 23:42

D+124 070717 괴레메, 오픈 에어 뮤지엄

아침 햇살에 눈을 떴다. 음, 이거 좋은데 하며 다시 잠들어 11시에 일어났다. 어제 많이 피곤했던 모양.

벌레는 흉터만 남기고 이제 완전히 사라진 것 같다. 이 색소 침착은 언제 사라지려나?

서양식의 까페에서 카푸치노와 샌드위치로 아침을 먹고 숙소 아줌마가 알려준 로즈 투어로 갔다.
카파도키아엔 그린 투어, 레드 투어, 열기구 투어 등의 프로그램이 있는데 무얼 할까?
오늘은 오픈 에어 뮤지엄(Open-air museum)에 가 보고 내일 Ilhala valley 가는 그린 투어를 하기로 했다.
투어 요금은 50YTL(1YTL=770원), 죽어도 안 깎아준다. 여행사끼리 약속을 해서 깎아주면 벌금을 내야 한다고.
여행사 직원이 오늘 한국에 전화가 안 된다고 휴일이냐고 묻는다.
아, 그렇지, 오늘 제헌절이지. 한국 공휴일을 종이 한장에 다 적어줬는대도 안 깎아준다. 이 동네 무섭네.
대신 좀 있으면 보스가 오는데 오픈 에어 뮤지엄까지 태워주겠단다.
마을 어귀의 맛뵈기 버섯 바위. 원래 벽이 있었는데 부서져서 열린 공간이 된 걸까?
오픈 뮤지엄 가는 길.
입구를 들어서자 마자 나타나는 버섯 바위.
8세기에 지어진 것도 있고 대개는10세기부터 13세기까지 만들어진 것으로 이슬람교를 피해 이 곳에 숨어든 크리스천들이 만든 교회, 무덤 등이다. 
자연이 풍화작용으로 버섯을 만들면,
인간이 거기 집을 지었다. 자연과 인간과 세월이 만든 멋진 조화.
계단을 올라,
안으로 들어가면,
벽화는 손상됐지만
상상력을 발휘하면 그 시대 사람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도 같다.
신경을 많이 쓴 듯한 공간.
입장료를 따로 받는 Dark church.
동굴 벽에 그려진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만큼 생생한 벽화.
가끔 힘들게 기어올라가야하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지질학적 성분에 의해 바위 모양이 결정되는 것 같다. 이건 왕관이나 열기구 모양?
터어키 사람도 많이 구경왔다. 아줌마가 같이 한 장 찍자고 해서 포즈를 취해주었다.
혼자서도 한 장 찍어주고.
처음에는 무척 신기했던 버섯 바위가 이제 슬슬 지겨워지고 있다.

일기장이 떨어져 입구 기념품 가게에 들렀는데,
한국 관광객이 많으니 한글 가이드북도 있다.
일기장을 고르고 있는데 옆에 있던 남자가 어디서 왔냐고 말을 건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개를 먹는냐고 물어본다. 이미 다섯 번쯤 거기에 대해 설명했는데 여기서 또 이런 질문을 만난다.
우리는 애완용으로 키우던 개를 먹는 게 아니라 식용 개를 길러 먹는 거다, 라고 설명하고 이것 저것 얘기하는데 같이 뭐나 마시러 가자고 한다. 네가 사면 내가 가지.
노천 카페에 가서 터어키 요구르트 아이란을 마셨다. 만들어주는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 요플레 같이 포장된 완제품이다.
맛은 약간 짠 맛이 나면서 싱거운 맛.
쟤들은 무거운 배낭 메고 언제 마을까지 걸어갈까?

아이란을 다 마셨는데 이 남자 별 말이 없다.
-이제 뭐 할 거에요?
-fairy chimney(선녀 굴뚝?) 보러 갈 건데, 좀 멀다면서요?.
-그거 musculine(남성적)하지 않아요? 그래서 여자들이 거기 가는 걸 좋아하죠. 내가 태워다줄께요.
그게..그렇게 생각은 안 해봤는데...
태워다 준다면 나야 땡큐지, 3km쯤 된다고 해서 거의 포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체코산 차를 타고 도착한 선녀 굴뚝, 난 그냥 굴뚝으로 생각하고 싶을 뿐이고.
반대편에는 물결을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지형도 있다.
이 아저씨, 슬슬 본색을 드러내 밤에 여기 오면 좋다는 둥 이따 자기 호텔에 오라는둥(호텔을 경영한다나?) 헛소리를 하고 있다. 터어키는 지금까지의 중동 국가보다 개방된 사회여서 좀 다를 줄 알았더니 아랍 남자는 다 똑같은 모양.
여자들을 꽁꽁 싸매 집에만 가둬 놓으니 남자들 눈에 여자는 성적인 대상으로밖에 안 보이나보다.
-빨리 괴레메까지 태워다나 주시죠.
그래도 중동 남자는 좀 치근대다가 단호히 거절당하면 기가 팍 죽는게 그리 위험하지는 않은 것 같다.
나야 공짜 아이란에 공짜로 차 얻어타고 손해 본 건 없다, 기분이 좀 상해서 그렇지.

몸도 마음도 피곤해져서 숙소에 들어와 쉬니 너무 좋다.
창 밖에는 터키 여인들이 오후의 담소를 즐기고 있다.
그런데 곧 좀이 쑤셔서 다시 나가봐야겠다. 윤-이 커플이 왔나 트래블러스 인에 가보기로 했다.
펜션 주인 팟마는 오늘도 여전히 대문 앞에서 핸드메이드 악세서리를 만들고 있다.
이렇게 앉아 있다가 지나가는 여행자가 있으면 Hello, Hand-made accessory!나 Room! 하고 부른다.
18살 때 결혼했는데 'husband, no work, money problem. I not happy, divorce'라고.
아들이 둘 있는데 지금은 어머니 집에 가 있다.
이 집은 부모님 소유, 아버지가 일을 열심히 해서 집이 두 채 있는데 하나에서 오빠가 살고 이 집은 언니와 팟마 소유로 팟마가 펜션을 운영해 아이들을 기른다고.
결혼생활보다 이렇게 돈을 버는 지금이 훨씬 좋단다. 자기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부자 한국 남자가 있으면 결혼하고 싶단다. 소개 좀 시켜 달라고. 흠,내 코가 석 잔데...
이 사진 갖고 가서 한국 남자한테 보여주란다. 하하 재밌는 아줌마다.

트래블러스 인에 가보니 윤-이 커플은 없는 모양, 여기까지 온 김에 언덕 위에 올라가 보자.
동굴 집에서도 위성 방송은 필수.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마을 풍경.
높은 곳이라 바람이 꽤 불고 춥다.
언덕 끝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와인을 마시고 있는데 한국인이 세 명 있다.
결혼날짜 잡아놓고 2주간 여행한다는 커플과 내과 3년차 여선생, 이스탄불에서 만나 같이 움직이고 있다고.
와인 파티에 합류해 같이 몇 잔 마시다 보니 즐거워졌다. 
밤이 왔다.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갔다.
나는 어제 먹었지만 항아리 케밥 못 먹어봤다고 해서 호텔 소개로 찾아간 레스토랑. 맛은 SOS 가 더 나은 것 같았다.
이제 터키가 한국인 여행지 1순위란다. 5년 전 일본에서 그랬듯이.
편리하고 물가 싸고(많이 싸지는 않다)  사람들도 친절하고 이국적이고.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매스 투어리즘(mass tourism)을 만나는 건 나같은 solo, 장기 여행자들에게는 별로 재미없는 일이다. 우선은 내가 너무 꾀죄죄하단 말이지.
오늘도 와인과 수다에 취해 잠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