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5. 10. 01:28

D+125 070718 카파도키아 그린 투어, 괴레메-안틸랴 이동

역시 아침 햇살이 나를 깨웠다.

오늘밤 안틸랴로 갈 계획인데 이 방을 떠나기가 싫다.
팟마가 아래층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Excuse me, breakfast ready, come!'하고 나를 부른다.
명사로만 이루어진 영어인데 어찌나 의사소통이 잘 되는지...!
어제 팟마가 5리라라고 아침을 먹지 않겠냐고 그래서 준비해달라고 했다.
방도 싸게 묵는 것 같고 손님이 나밖에 없어서 웬지 미안한 느낌.
내려가니 나보고 빵을 좀 사오란다. 자기는 못 나간단다. 에이, 나도 잠옷 입었는데...
어쨌든 가르쳐 준대로 빵집에 가서 방금 만든 따뜻한 에크멕 빵 2개 사왔다.
에크멕 빵, 잼, 차, 올리브, 매운 토마토 소스, 삶은 달걀이 나오는 소박한 터키식 아침식사다.

짐을 챙겨두고 투어 사무실로 갔다.
오늘의 투어 멤버는 한국인 남자 둘, 미국 여자 둘, 프랑스 여자, 터키 남자 커플과 세 딸, 그리고 나, 단촐하다.
우선 괴레메 파노라마라는 곳에 갔다.
카파도키아의 모든 투어 차량이 들르는 곳이다. 관광객 중 반이 한국 사람인 것 같았다.
특이한 지형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미니버스는 평원을 한참이나 달려서 데렌쿠유로 이동.
지하도시로 BC1400년 경 히타이트 족이 처음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5세기 경 초기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박해를 피해 이곳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가파른 계단과 좁은 통로를 내려가면,
거대한 규모의 지하도시가 펼쳐진다.
우물도 있고,
지금은 쓰레기로 차 있지만,
공기 구멍도 잘 만들어 놓았다.
교회나 학교로 사용되었던 넓은 공간도 있고 심지어는 와이너리도 있었단다.
모두 열심히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다.
종교가 뭔지 참 사람들이 많은 노력을 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언젠가 어렸을 때 이런 동굴을 탐험하는 꿈을 꾸었던 것 같기도 하다.
모든 것이 과학적이고 이치에 맞추어 설계되어 있어 인간의 지능은 별로 발전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곳에도 관광객이 많았다. 우리는 소그룹이어서 빨리빨리 움직일 수 있어 그나마 나았다.

다음 코스는 일할라 계곡
지진으로 땅이 갈라져 높이 100m, 길이 14km의 협곡이 형성된 곳이다. 
아래로 내려가 골짜기를 따라 걷는 코스.
도끼로 찍어놓은 것 같은 바위.
하늘에서 보면 멋질 것 같다.
이 곳 곳곳에도 비잔틴 시대의 교회들이 남아있다. 이렇게 크리스트교가 번성했던 곳이 무슬림 국가가 되었다니 이슬람교에 뭔가 더 특별한 게 있는 걸까?  
한 시간쯤 걸어서 식당에 도착.
스프,
볶음밥(뭔가 다른 이름이었는데?)으로 점심식사.
같이 투어에 참가했던 두 한국인 청년은 알고보니 피부과, 이비인후과 레지던트 2년차였다.
일주일의 휴가를 이용해 카이로, 룩소르, 이스탄불, 카파도키아, 페티예를 도는 바쁜 일정이니 계속 야간 비행기, 야간 버스를 이용해 피곤한 모습이다. 나도 전에는 그랬었지...
어제는 내과 레지던트에 오늘 이 친구들까지, 병원은 도대체 누가 지키고 있는거야?

밥먹었으니 다시 출발.
길 한가운데 갑자기 세워준다. 뭐가 있다는 거지?
오호, 저건...
여기서 스타워즈를 찍었단다. 스타워즈를 본 적이 없으니 잘 모르겠지만 뭔가 SF적인 분위기다, 분명.

슬슬 지치기 시작, 또 어디를 들러야 하는 거지?
바위산 위의 교회.
바위 사이로 난 길을 따라 한참 올라가면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바위마다 구명을 뚫어놓았는데 다 용도가 있을 것이다.
초기에는 교회로 사용되었고 무슬림 지배하에서는 숙소(accomodation)으로 쓰였단다.
적을 막아내기 위한 장치도 있고 탈출로도 있다.
모두 지쳐서 쉬고 있다.
노란 옷을 입은 우리 가이드, 문법적으로 정확한 영어를 구사한다. 말도 천천히 해서 알아듣기 쉽고 최고의 가이드.
미국에서 왔다는 친구와 한 장.
오늘의 마지막 코스는 우치사르, 피죤 밸리(Pigeon valley)
비둘기 똥을 비료로 이용했고 연락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했다고.
비둘기를 저기서 키웠다는 얘긴가? 잘 모르겠네.

투어의 진짜 마지막 순서는 쇼핑센터. 터키 특산품이라는 Onyx(보석의 일종)로 만든 악세사리 숍에 들른다.
설명하는 사람이 한국말 진짜 잘한다. 사람들이 많이 사가는 모양, 나는 물론 패스~

악귀를 쫓는다는  evil eye 가 걸려있는 나무가 투어의 마지막.
6시가 지나 끝나는 힘든 투어였다. 기어올라가거나 기어내려가야 하는 곳도 많고. 3만 5천원으로 이만하면 알찬 투어였다.
오늘 밤차 타고 페티예로 간다는 레지던트 친구들에게 저녁을 사주었다.
연장자가 밥을 사는건 한국 스타일.
이 일주일의 기억으로 앞으로 일년간 잘 버티길 바라며.

돌아오는 길에 보니 동네 사람이 다 나와있다.
뭐지?
선거철인가보다. 유세 차량 좋네.

버스 시간이 남아 윤-이 커플이 왔나 트레블러스 인에 다시 가보았다. 아직 안 왔나 보다.
여기 지나면 길이 달라져 만나기 힘들텐데 아쉽다.
짐을 챙겨나오며 팟마와 한 장.
한국 친구들 만나면 주라고 명함 한 아름 준다. 괴레메에 가시면 하얌 펜션을 찾으세요.
팟마가 돈 많이 벌고 좋은 남자도 만났으면 좋겠다.

배낭을 메고 골목을 내려오는데 저기서 빨간 옷을 입은 커플이 손을 흔들며 온다. 윤-이 커플이다.
못 만날 줄 알았는데 마지막 순간에 만났다.
어제 아침에 도착해서 투어 안 하고 버스타고 여기 저기 돌아다녔다고. 나도 그래 볼 걸 그랬나?
여긴 너무 단기 여행자들 뿐이라 얘기거리도 없고 재미없단다. 복장도 우리는 꼬질, 그 사람들은 한국 패션 그대로.
같이 버스를 한참 기다려 주었다. 하마에서 벌레 물렸을 때 도와주고 알레포에서 만나고 여기서도 만나고 재밌었는데 이제 못볼 것 같으니 아쉽다. 
이들의 여행 얘기를 들으며 문득 든 생각, 나도 이 여행을 끝내고 중국부터 육로로 아시아 한 번 훑을까?

이 버스는 밤새 나를 또 어떤 낯선 도시로 데려가줄까? 약간의 두려움과 그보다 조금 큰 기대를 갖고 버스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