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24. 10:28

D+190 070921 마추피추에 오르다.

5시에 깼으나 5시 30분 버스를 타러가기에는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캄캄하고 피곤해서 다시 잠들었고 일어난 시간은 6시 40분, 7시 30분 버스를 탈 수 있겠지.
버스를 타러 가니 버스도 몇 대나 기다리고 있고 사람들도 많다. 시간표와 다르게 5시 반부터 계속 버스가 출발한 것 같다.
조금 더 일찍 갈 수도 있었는데. 딱 한 자리 남아있던 버스를 타고 출발.
마추피추 유적까지는 산을 지그재그로 8km 올라가야 한다. 좁고 아슬아슬한 길을  버스는 잘도 올라간다.
 
마추피추에 도착한 시간은 7시 40분.

우선 첩첩 산중에 내리쬐는 햇빛이 보이고,

갑자기 눈 앞에 마추피추가 나타난다. 드디어 나 여기까지 왔다.

감탄하고 있을 새가 없다. 더워지기 전에, 좀더 많은 사람이 몰리기 전에 와이나피추에 올라야 한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와이나피추(Wayna Picchu)는 하루 400명으로 입장이 제한되고 입산 시간은 오후 한 시까지, 하산은 오후 네 시까지.
잉카 트레일을 안 했기에 와이나피추라도 올라가봐야한다. 노력할수록 얻는 감흥이 클 것이기 때문.
30분쯤 기다려 입장, 내 번호가 195번, 벌써 내 앞에 194명이 올라가 있단 말이댜?
올라가면 끝내주는 경치를 볼 수 있다는데 거의 경사 70도의 돌계단을 기어올라가야 한다.
이거 쉽지 않네, 한국에서 등산하던 것과 비슷하긴 한데...중년의 백인 아줌마들은 헉헉대고 못 올라간다.

어제 기차타고 왔던 골짜기도 내려다보이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기어올라가고 있는 사람들, 아, 난 언제 저기까지 올라가나.
계속 나를 앞장서 올라가던 프랑스 청년, 올리비에, 은행에서 일하는데 석 달의 휴가를 받았단다.
매년 그런 건 아니고 10년 일했더니 석 달 줬다고. 그래도 좋은 걸...
버스도 안 타고 아구아스 깔리엔떼스부터 남들은 한 시간 반 걸리는 길을 40분만에 걸어왔다고, 대단한 놈.
나는 뒤에 처지고 올리비에는 벌써 저만큼 올라가 있다.
한 시간쯤 걸려 꼭대기에 닿았다.

마추피추가 저 아래 내려다보인다. 우와, 탄성이 절로 나오는 광경이다. 정말 올라오길 잘 했다.
아래에서는 볼 수 없는 도시 전체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혹자는 콘돌을 닯았다고 하고, 미키마우스 같다는 사람도 있고.

1911년, 하이램 빙엄은  인디오 꼬마 소년을 따라 풀숲을 헤치고 올라와 이 유적을 발견했다. 그 전까지는 바깥 세상에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첩첩 산중에 이런 유적을 남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이었을까?
언제, 어떤 용도로 지어졌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스페인의 침략을 피해 도망치던 잉카 제국이 잉카 문명을 보존하기 위해 건설한 도시라고도 하고, 복수의 칼날을 갈았던 곳이라고도 하고.
잉카 제국이 비밀의 도시 빌카밤바를 건설했다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처음에 하이램 빙엄이 마추피추를 발견했을때 빌카밤바인줄 알았는데 황금이 발견되지 않아 빌카밤바는 어딘가 다른 곳에 있을 것 같다는 결론. 안데스 산맥 깊숙한 곳, 아직 현대 문명이 닿지 않은 곳에 황금도시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아저씨가 헉헉대며 올라오며 하는 소리, 여기 올라오기 위해 지구 반바퀴를 돌아왔쟎아.
그렇다. 이렇게 멀리 떠나와 책에서만 보던 걸 내 눈으로 보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어느 산 꼭대기나 그렇듯, 사람들은 이제 할 일을 다했다는 표정으로 쉬고 있다.

나를 앞서간 올리비에를 다시 만났다.
에너지바를 먹고 있었는데 먹을 걸 하나도 안 가져왔다기에 한 개 남은 에너지바를 줬더니 사양도 안하고 덥석 받는다. 나도 그거 한 개 밖에 남은 게 없는데, 1.5솔이나 준건데, 괜히 착한 척 했네.

딴 친구가 한 시간 반쯤 가면 멋진 동굴이 있다는 걸 어디선가 읽었다고 하자 탐험하러 가고 있는 두 친구.
나는 여기까지로 족하다.

한 번만 더 보고 내려가자. 아까는 해가 쨍쩅하더니 점점 흐려지고 비가 한 두 방을 뿌린다.
내려오다 보니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올라가는 사람들이 안쓰럽다. 얼마 안 남았어요, 올라가면 정말 멋져요, 이런 얘기를 하기 위해 산을 오르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올라갈 때 이름을 적고 내려올때 다시 확인한다. 나는 11시 30분에 내려왔다.
슬슬 비가 오기 시작한다. 마추피추의 날씨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들었으나 당연히 우비 같은 것은 없다.
일꾼들을 위한 오두막 같은데서 비를 피하니 또 서서히 그치기 시작한다.

약 만 명의 사람들이 생활할 수 있는 곳이며 신분 별로 거주지가 구획되어 있다.

그 옛날 이 곳에 살았던 사람들도 자신들이 아름다운 곳에 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을까?

뒤에 보이는 산이 와이나피추.

에구, 가이드가 없이 혼자 다니니 뭔자 중요한 걸 많이 보고도 의미를 모르겠다. 이게 무슨 신전이던가?

나는 그냥 풍경을 즐기련다.

아래가 이렇게 잘 내려다보이는데 아래에서는 어디 마추피추가 있는지 전혀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공중 도시라고 불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바깥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을 것이다.

겹겹 산중, 어떻게 이런 곳에 도시를 건설할 생각을 했을까?
마추피추는 유적 자체로도 의미가 있겠지만 이런 산꼭대기에 있다는 게 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하긴 500년전이면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닌데 서양인들이 워낙 황금 그런데 집착하고 있어서 높이 평가받는 것 같기도.

구름도 발 아래 있는 높은 곳이다.

버스 타고 올라오는 길, 13번의 커브를 돈다고.

주민들의 식생활을 해결하기 위한 계단식 밭.

알파카도 키웠겠지.

가이드의 지시를 따라 잉카의 정기를 받고 있는 사람들, 참, 별별 사람이 다 있다.

누군가에게 부탁해 찍은 것, 서양인에게 부탁하면 꼭 위 아래 짤라먹는다. 사진 찍는 실력은 우라나라랑 일본이 제일 낫다.
신났구나.

마추피추 유적 안에는 화장실도 없고 식당도 없다. 안에서 음식을 먹는 것도 금지돼 있다.
입구에 화장실이 있는데 티켓을 보여주면 나갔다 다시 들어올 수 있다.
이제 슬슬 나가봐야겠다.

마지막으로 가장 높은 포인트에 올라가 찍은 사진.
이제 다시 못 볼 것을 알기에 자꾸 뒤돌아보게된다.
500여년전 이 도시를 버리고 떠나던 잉카 사람들도 그랬겠지. 스페인 군대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들리고, 일궈놓은 밭, 삶의 터전을 남겨두고 떠나는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한발자국 뗄 때마다 뒤돌아보지 않았을까.

어쨌든 나는 배가 고파 나가봐야겠다. 올리비에에게 줘버린 에너지바가 무척 아쉽다.
입구에 카페테리아가 있는데 예상대로 무척 비싸다. 내려가서 먹어야겠다.
버스를 타볼까도 생각했는데 줄이 너무 길다, 6달러나 하고. 여행자가 남는 게 시간과 체력이지, 걸어내려가자.
버스가 지그재그로 올라온 길을 직선으로 내려가는 돌계단 길이 있다. 힘들지는 않은데 무릎 관절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먹은 것도 없어 체력도 떨어져 다른 사람들이 다 나를 앞지르기 시작한다.
중간에 버스길과 만나는 곳에 어떤 아줌마가 아들이랑 같이 앉아 물과 샌드위치를 판다.
3솔을 주고 샌드위치를 사먹고 기운이 좀 낫다. 적소, 적시에 앉아있는 아줌마, 사먹은 사람은 나 밖에 없어보이긴 하지만.

드디어 평지로 내려왔다.

이제 거의 다 온 거겠지?

걸어내려오는 길은 3.5Km, 6달러를 아낀 건 좋았지만 정말 지쳐 버렸다.

저 위에 마추피추가 있단 말이지, 정말 아래서는 하나도 안 보이네.

어제 빅터가 알려준 메르까도에 가서 4솔짜리 돈까스와 수프를 먹었다. 이제 좀 정신이 난다.
호텔에 들어간 시간이 6시 반, 아침부터 11시간 내내 걸은 셈이니 정말 피곤하다. 어느 새 잠들어 깬 시간이 9시.
이대로 있기는 너무 아쉬워 나가봤다.

마을 광장에는 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다. 흥겨운 라틴 리듬의 음악이다.

동네 사람들과 관광객이 어울려 춤을 추고 있다. 음악만 나오면 저절로 몸을 흔들게 되는 것이 라틴적인 것일 것이다.
슈퍼에서 꾸스꼬 맥주라는 꾸스께냐를 사가지고 돌아왔다. 여기 고도는 2천 미터 정도라 괜찮은데 꾸스꼬에 가면 머리가 아파 술 생각이 안 날 것이기에.

그래, 나 마추피추에 갔다왔지, 음, 혼자 기념삼아 마시는 맥주맛도 나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