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29. 09:24

D+195 070926 꼴까 캐년 가는 길

오늘 칠레로 넘어간다는 테레사는 벌써 아침을 먹고 있다.
6시 50분에 택시가 도착, 나가서 배웅했다. 큰 백팩, 혼자, 잔뜩 긴장한 얼굴,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남들 눈에는 어느 정도 그렇게 비치겠지. 부디 테레사가 여행을 더 즐길 수 있기를 바래본다.

7시 반에 꼴까 캐년 투어(Canon del Colca) 버스가 왔다. 나랑 앤디가 같이 버스에 오르자 가이드가 커플이냐고 묻는다.
Oh, No, just friends.
중년 커플 셋, 젊은 커플 하나, 그리고 나랑 앤디, 조촐한 멤버다.
젊은 커플이 영국 사람이어서 앤디랑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앤디 발음은 알아듣기 쉬운데 그 커플 영어는 영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나는 어디서나 마이노리티(minority, 소수자), 여자, 아시안, 솔로, 이 모든 것이 그런 느낌을 준다.
웨스턴은 이런 심정을 모를 것이다.

투어 버스는 우선 아레끼파 주위의 산을 볼 수 있는 곳에 선다.
차차니(6075m)
엘 미스티(5822m)
가이드는 올리비에, 재미있게 설명을 잘 해 준다.
고산으로 올라갈 때는 코카잎(코카인의 원료)를 씹어야 고산병이 예방된다고 시범을 보여 주고 있다.
버스는 오르막길을 한참이나 오르더니,
고원 지대를 달리기 시작한다.
4500미터가 넘으니 무척 춥고 머리도 약간 어질해진다. 그래도 꾸스꼬에서 적응해 둔 게 있어 그리 힘들지는 않다.
페루 고원 지대에서 사파리, 피꾸냐(Picuna)
허허벌판에 그래도 잘 닦인 도로가 있고 트럭이 달려온다.
삐꾸냐를 조심하라는 표지판.
어디를 둘러봐도 삐꾸냐 떼가 있다.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도 전혀 놀라지 않는다. 색깔이 여러 종류인건 어떤 유전 법칙 때문일까?
멘델의 강남콩 같은 걸까?
길은 잘 닦여져 있지만,
여기는 조나 드 삐꾸냐, 삐구냐가 주인인 세상이다.
영국 커플, 사라, 알리스타, 사진을 찍으러 다가서고 있는 앤디.
중간에 휴게소에 선다. 버섯 모양의 지형은 터키 카파도키아에서 본 것과 비슷.
전기도 수도도 없어보이는 곳에 집 몇 채, 과연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일까?
우리나라에서 소원을 기원할 때처럼 돌을 쌓아놓은 곳도 있다.
나도 돌 하나 쌓고 소원을 빌었다.
차가 휴식을 취할만한 곳에는 어디나 기념품 좌판이 있다.
작은 아이들이 알파카 새끼 한 마리씩을 데리고 포토, 포토 한다.
캐나다에서 왔다는 중년 부부는 색연필과 공책을 준비해 와서 아이들에게 나눠 준다. 오, great!
우리 엄마도 인도나 방글라데시에서 저런 모습이셨겠지.
오늘 밤 묵을 치바이(Chivay)가 보인다. 표고 3600미터.
킬리만자로 올라갔을 때 다시는 2천미터 넘는 곳에는 발도 디디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남미에 오니 그게 웬말?
발 딛는 데마다 최소 3000미터다. 엘 미스티(5822m)에 올라가는 투어도 있다는 데 그거나 한 번 해볼까?

치바이에 도착하자 각자 숙소로 안내해 준다.
처음에 투어 신청할 때 도미토리로 신청했는데 지금 보니 남들은 다 커플이라 프라이빗 룸을 신청한 것 같다.
나랑 앤디만 도미토리면 어쩌지? 앤디도 그런 생각을 했는지, 돈을 더 내면 싱글룸 줄 거야, 했었다.
그런데 올리비에가 'You are not couples" 하더니 추가 요금 애기도 없이 각자 싱글룸을 준다. 
-다행이지? 나는 발냄새가 나거든. 옆방으로 들어가며 앤디의 말
-그럼, 나는 아마 코를 골지도 몰라, 내가 어떻게 알겠어?
우리 둘다 구원받았다고(both saved) 되었다고 앤디가 사라와 알리스타에게 얘기한다.

숙소를 잡고 주변을 하이킹 하러 갔다.
개울물도 흐르고,
높은 산도 보이고,
양철지붕의 집이 있는 치바이 마을, 인구가 5천명이나 되는 꼴까 캐년 주변의 중심도시이다.
사라와 알리스타는 9년째 커플, 앤디는 칠레에 있는 누나도 만날 겸 여행을 왔고 원래 여자친구랑 왔는데 싸워서 지금은 따로 여행하고 있다고.
올리비에,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프랑스 커플이 두 쌍, 퀘벡주에서 온 커플이 한 쌍이니 불어로 설명하고 있는 중.
이것도 무슨 잉카 유적인가보다. 설명 안 듣고 딴 짓만 하고 다녀 모르겠다는
양떼를 몰고 돌아오는 소년.

하이킹을 잠깐 하고 다른 사람들은 온천을 하러 갔다. 3.5km 떨어진 곳에 유황 냄새 나는 온천이 있다고.
나는 수영복도 안 갖고 오고 가기도 싫어서 안 간다고 했다. 알리스타가 'lovely'할 것 같은데 왜 안 가냐고 한다.
하하, 왜 이러셔, 난 순진해서 그런 말 들으면 진짜인 줄 안단 말이다.
나는 광장이 보이는 까페에서 차를 한 잔 시키고(코카차였나?)일기를 쓴다.

고지대여서 낮에는 햇볕이 따가운데 저녁이 되자 바람이 많이 불고 무척 추워진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데 내가 무척 추워하니 앤디가 모자를 사야 한단다. Silly hat, 페루 여행자의 반이 쓰고 다니는.
알파카 스테이크로 저녁을 먹고 시장에 갔다. 밤에도 사람이 무척 많다. 
노란색 털모자를 샀다. 각자의 모자를 다 내어놓아 보았다. 내일은 다 같이 쓰고 찍어보자.
시장에서 팔고 있는 약초차, 이것저것 섞어서 만병통치약이라는데,
차를 마시고 있는 앤디,

페루에서 silly hat 을 샀으면 다음에 해야 할 일은 피스코 샤워(Pisco sour)를 마시는 일.
피스코 샤워는 페루의 전통 브랜디.
그래서 silly hat을 쓰고 피스코 사워를 마셨다. 레몬 소주 같은 맛인데 의외로 독하다.
술 한 잔 들어가니 재밌어져서 이 술은 내가 산다고 했다.  Korean culture 거든.
알리스타 커플이 내일 아레끼파에 돌아가서 British pub 을 찾으면 자기네가 쏘겠단다. 그것도 좋지.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해서 조금만 마시고 일어났다. 
작은 마을의 밤거리를 앤디와 걸어 돌아왔다.
달이 밝아 하늘이 환하게 보이고, 어딘가 있는 디스코텍에서 희미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