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30. 10:05

D+196 070927 엘 콘도르 파사(El Condor Pasa), 콘돌을 보다.

왜 모든 동물은 새벽이나 밤에 움직이는 걸까?
콘돌을 보러 가기 위해 새벽 다섯 시 반에 기상해서 혼자 투덜댔다.
투어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영국 커플, 말아피우는 담배를 갖고 다니며 끊임없이 흡연중. 
고원의 새벽 공기는 무척 차가워서 담뱃불이라도 쬐고 싶은 심정이다.
이 동네는 선인장으로 도둑을 막는다.

버스는 비포장 길을 한참이나 달린다.
길 옆으로 색색깔의 농경지, 계단식 밭들이 펼쳐진다. 꼴까 강을 따라 이어지는 계곡이다.
아침 안개가 피어 오른다.
강이 있으니 땅은 비옥하겠지만 제대로 된 다리가 보이지 않으니 건너다니는 것도 문제겠다.
사람들이 하나하나 손으로 일군 밭, 색깔이 아름답지만 그들의 힘든 노동에 마음이 아프다.
이른 아침인데도 현지인들이 기념품을 팔고 있다. 하긴 콘돌을 보러 가는 시간은 정해져 있을테니 이 시간을 놓치면 하루를 공치는 게 되겠다.
알파카 털로 실을 잣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할머니.
사진 한 장 찍고 1솔을 쥐어드렸다.

콘돌을 볼 수 있는 전망대에 도착한 시간은 8시, 벌써 많은 사람들이 사진기를 들이대고 있다.
그랜드 캐년보다 깊은 계곡이라는데 여기서는 그걸 잘 느낄 수가 없다.
콘돌이 바로 눈 앞에서 날아오르고 있다.
바위에 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도 있다, 사람들이 보고 있는 걸 알기라도 하는 듯.
콘돌은 죽은 고기를 먹고 사는데 직접 죽이지는 않고 동물을 높은 데서 떨어뜨려 죽인 다음 썩을 때까지 기다린다.
페루에서 신성한 새로 여겨지며 지금 몇 마리 안 남았는데 사람들이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
콘돌을 보러 온 인파.
이 계곡을 따라 걷는 트래킹도 할 수 있는데 계곡 아래까지 내려가는 데만 한 시간이 걸린다고.
론니에는 3191미터의 캐년이라고 나와 있는데 이게 설마 깊이를 말한 걸까?
험한 느낌을 주는 산이다.
난 서양애들이 좋아하는 bird watching 같은 데는 별로 흥미가 없지만,
콘돌이 큰 날개를 펴고 유유히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보는 건 좋았다. 어쩜 날개짓 한 번도 안 하는지.
계곡에서 올라오는 바람을 이용한다는 얘기를 들은 것도 같다.
해가 점점 높이 올라가자 콘돌은 더 멀어진다. 이제 슬슬 돌아가야 할 때.
콘돌 전망대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 Pinchollo, 환영한다는 마을 어귀의 아치.
이 계단식 밭에서는 주로 감자를 키웠는데 키우고 운반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 감자값이 비싸단다.
그런데 정부에서 관세도 없이 외국에서 싼 감자를 수입해서 지금은 밭이 거의 놀고 있다고.
싼 감자, 페루보다 싼 감자, 어디? 올리비에, 한 번 둘러보더니
-여기 네덜란드 사람 없지요? 네덜란드에서 수입하죠.
네덜란드? 거긴 땅도 좁고 물가도 훨씬 비싼데? 정부에서 보조금을 주어 감자를 생산해 이 곳에 수출하는 것.
이 곳 농민들의 삶은 어쩌고?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얘기다.
자유무역이라는 허상 아래 잘사는 나라는 더 잘 살 게 되고 못 사는 나라는 점점 더 가난해진다.
잠깐 쉬면서 어제 얘기했던 데로 silly hat을 쓰고 포즈를 취했다. 나보고 둔덕 위에 서라는 배려까지.
나는 선인장을 먹고 있다.
중간에 들른 마을의 교회 모습.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의 대화.
여기 현지인은 결혼하기 전에 4개월씩 각각의 집에서 동거하는데 그 동안 가족들이 판단해 결혼할 지 말지를 결정한다고.
올리비에가 앤디에게 시도해보라고 한다. 나보고도 해 볼 생각이 있냐고 한다. 
오, 물론, 그런데 밥하고 빨래 하고 해야 한다나? 그럼 사양.  
올리비에는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걸 얘기해 준다. 사실 모두 잉카 문명 얘기에는 조금씩 질려있었던 것.

오후 네 시에 아레끼파 도착, 영국 커플과 앤디가 팁을 얼마나 줄 지, 운전사에게도 줘야 하는지 골똘히 의논하고 있다.
팁에 익숙한 서양인들도 이런 상황에는 고민을 많이 한다. 
나도 이들이 주는 만큼 올리비에에게는 10솔, 가이드에게는 6솔을 주었다. 
투어에서는 어떤 가이드를 만나느냐가 무척 중요한데 올리비에는 정말 최고의 가이드였다. 
평이 좋은 호스텔에서 소개하는 투어는 대개 괜찮은 것 같다. 

앤디는 내일 아레끼파를 떠난다고 머미(mummy)를 보러 갔다. 화산재에 묻혀 있던 후아니타라는 이름의 유명한 소녀 미라가 있기 때문.
나는 그냥 좀 쉬다 7시에  아르마스 광장으로 영국 커플과 앤디를 만나러 갔다.
올리비에가 가르쳐 준 로컬 펍을 찾아갔는데 너무 컴컴해 웨이터들이 후레쉬를 들고 다니는 음침한 곳이었다.
우리나라 맥주집이 훨씬 나은 것 같다.
알리스타가 영국에서 펍에 가봤냐고 한다. 안 가봤는데?
-아늑하고 따뜻하지, 꼭 가봐야 해, 영국 사람에게 필요한 건 커리 하우스와 펍하고 친구(mate)뿐이야. 그것만 있으면 돼.
그렇구나. 영국에서 커리도 못 먹고 펍에도 안 가보고 친구도 못 만들었으니 다시 한 번 가야겠다.

한국에서 개를 먹는다는 애기를 하길래(난 이제 이 이야기에 관대해져서 맛있다고(delicious)하다고 선수를 친다) 우린 똥개(Shit dog)를 먹는다고 가르쳐줬더니 무척 재밌어하며 한국말로 '똥개''똥개' 연습을 하고 있다. 
다음에 한국 사람 만나면 써먹는단다.
맥주 한 잔씩 마시고 레스토랑 갔다. 닭과 칩스를 먹고(사라는 채식주의자라 먹을 게 칩밖에 없다) Chica morado 라는 보라색 옥수수로 만든 음료수도 마셨다. morado는 보라색이라는 뜻.
그리도 또 피스코 사워를 마시러 간 것. 우리는 항상 밥 먹고 술 먹고 술 먹는데 얘들은 술 먹고 밥 먹고 또 술 먹는다.

외국 애들이랑 얘기하게 되면 아무래도 한국 얘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 그럴수록 내 나라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는 걸 깨닫는다.
태극기의 의미도 모르고 소주가 뭘로 만들어지는 지도 모르고 사람들이 삶도, 북핵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그 외국인에게는 내가 그들이 만난 첫번째 한국인일지도 모르고 평생 만나는 오직 한 사람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우리나라를 보는 많은 다른 관점이 존재하지만 그들에게는 내가 한국의 전부일수도 있는 것이다.
좀더 좋은 한국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착한 생각을 해봤다.

이메일 주소를 교환하고 포옹하고 헤어졌다. 2일동안 참 즐거웠는데 헤어지려니 아쉽다.
커플은 내일 푸노 가고 앤디는 Tacna 가고 나는 모레 푸노 갈 것이다.
앤디는 산티아고 누나 집에 머물 거라는데 내가 산티아고 갈 때쯤 연락해 보기로 했다.
모두, 우울한 날씨의 영국으로 돌아가도 이 고원의 상쾌했던 바람과 햇살을 기억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