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8. 5. 09:42

D+203 071004 이슬라 델 솔-코파카바나-라파즈 이동

어제 많이 걸었으나 일찍 잠들지 못했다. 새벽에도 일찍 깨어 여명이 밝아오는 것을 보았다. 해가 뜨기 전의 희미한 빛.
전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여행 중 밤기차, 밤버스를 타면서, 길고 지루한 밤이 지나고 여명이 밝아오고 해가 뜨는 게 얼마나 반가운지를 새삼 깨달았다.
이제 태양의 섬을 떠난다. 2박 3일동안 햇반 한 개랑 김으로 버티고 세수만 하고 머리도 못 감았으나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틀치 숙박비 60B와 부엌 이용료까지 70B을 계산하려 100B 지폐를 줬더니 아줌마가 독일 애들에게 돈을 바꿔 거슬러 준다. 단 30B의 현금도 없는 것이다.

배낭 메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여기서 넘어지면 최소 사망일 것이다.
부두에는 많은 여행자들이 배를 기다리고 있다. 들어오는 배는 10B였는데 나가는 배는 15B다.
어떤 껄렁해 보이는 배낭 여행자가 오더니 한국에서 왔냐고 묻는다. 그래
-중국, 난징에서 영어를 가르쳤는데 그 때 한국학생들 많이 봤어. 여긴 한국 여행자 별로 없는덴데...
-그렇지, 넌 어디서 왔니?
-뉴저지, 너는?
-서울은 아니고 서울에서 가까워
-그럼 수원?
-어, 어떻게 알았어?
-수원 애들이 꼭 그렇게 얘기하지.
한국말도 제법하고 영어도 알아듣게 쉽게 말하는 앤데 너무 껄렁해 보인다.
헤어질 때는 '안녕히 가세요, 수원 친구' 한국말로 똑똑히 말한다.
외국인들이 영어를 가르치는 것, 단지 그들이 영어를 한다는 이유로 좋은 대접을 받는 게 짜증나기도 하지만 그래서 그들이 아시아를 좀 더 잘 이해하고 좋아하게 된다면 그리 나쁜 일도 아닌 것 같다. 결국 우리가 그들을 대하는 태도가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본 이슬라 델 솔 모습,
아랫층 실내에 앉았는데 어떤 섬 할아버지가 'Buenos dias, senorita' 하더니 내 옆에 딱 붙어 앉는다.
여기는 사람 사이의 일반적 거리가 이 정도인가, 불편해져서 2층으로 도망갔다.
올 때처럼 바람이 차갑지 않아서 다행.
중간에 들른 어떤 섬.
코파카바나에 도착해 라파즈 가는 버스표를 우선 샀다. 20B.
표 사다가 어떤 영국애 만났는데 얘는 무지 시끄럽다. 왜 나한테 스페인말을 못하느냐고 막 따진다.
나도 노력하고 있다구. 같이 점심 먹으러 가자고 해 가보니 투어리스트 레스토랑, 너무 비싸다.
이따 봐, 하고 돌아서니 한국인 돈 많쟎아, 한다. 그런가, 니네가 훨씬 많쟎아, 쏘아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시장 쪽으로 가 보니 좀 싼 식당이 있다.
2박 3일동안 햇반 하나로 버텼으니 맛있는 걸 먹어줘야 해, 티티카카 호에서 난다는 송어(Trucha)를 시키고 앉아있는데 주인 아저씨가 방명록을 가져온다.
몇 명의 한국인이 메세지를 남겨놓았다. 우연히 들어온 곳에서 한글을 만나니 반가웠다.
송어도 큼직하고,
기분이 좋아져 방명록에도 몇 줄 글을 남겼다.
버스는 황량한 땅을 달린다.
호수가 보였다 안 보였다 한다.
어느 마을에 도착하니 모두 내리란다. 호수를 배로 건너야 하는 것이다.
아마도  San Pedro de Tiquina,
마을 광장에서는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여권 검사도 하고 배 타면서 1.5볼리비아노도 따로 지불해야 한다.
버스를 타고 건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사람대로,
배는 배대로 호수를 건너야 한다. 이거 되게 재미있다.
여러 종류의 버스가 있기 때문에 자기가 탔던 버스를 잘 기억해 둬야 한다. 배낭은 버스에 실려 있으니 헷갈리면 큰일.
부딪치지 않는 게 다행, 부두에 내려서도 내 버스가 어디 있는지, 벌써 가버린 건 아닌지 걱정하며 찾아야 했다.

이제 호수에서 점점 멀어져 간다. 황량한 벌판, 가끔 갈아놓은 밭도 보이지만 놀고 있는 땅이 대부분, 끝도 없이 펼쳐진다.
그리고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난 거대한 도시,
라파즈다. 고도 3660m의 분지에 위치한 인구 백 오십만의 볼리비아의 수도.
집이 따닥따닥, 산기슭을 따라 지어져 있다.
부자는 낮은 곳에 살고 가난한 사람일수록 높은 데 살 것이다. 도시로 몰려드는 가난한 사람들은 점점 높은 곳에 집을 지을 수 밖에 없다.
웬지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고도가 높은 탓도 있겠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리라.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Hostel Austria로 갔다. 전에 만난 누군가가 거기가 좋다고 했기 때문.
그런데 싱글룸이 없단다.  역시 론니에 나온 숙소에는 자리가 별로 없다.
아저씨 말이 2인용 도미토리가 있는데 브라질리언 가이가 한 명 있단다. 단 둘이 도미토리에? 그건 좀...
다른 호스텔 소개해 줄 수 없냐고 물어보니 다른 도미토리를 보여 주는데 침대 네 개가 모두 비어 있다.
이 방 주기 싫었던 거다. 방 넓고 혼자 있으니 좋네, 물론 요금은 도미토리 요금, 하루에 27B(3500원).

바로 나와서 unicentro 라는 한국 식품점을 찾아나섰다. Yanacocha거리니 호스텔에서 가까운데 있다.
들어가보니 라면이 없다.  아니...어떻게...이럴 수가!, 현지인 종업원이 11월에나 들어온다고 한다.
그때는 당연히 여기 없죠. 너무 실망해서 다리가 다 후들거렸다.
참크래커와 커피믹스, 국수, 당면은 있다. 고추장도 약간 땡겼으나  밥하기가 싫을 뿐이고.
거금 30B를 주고 참크래커를 샀다. 눈썹 정리하는 것도 20B를 주고 샀다. 이게 정말 필요했는데 아무데도 비슷한 걸 파는 데가 없었다. 한국하고 일본에만 있는 것 같다.
 
밤거리니 식당 찾아 돌아다니는 것도 그래서 눈에 띄는 버거킹에 들어갔다.
역시 전세계 똑같은 모양의 셋트 메뉴, 재미는 없지만 안심은 되는. 25B

거실에서 볼리비아 여행 계획을 세운다.
루레나바께는 버스를 16시간이나 타야 해서 포기, 아마존의 벌레들도 만나기 싫고.
식민지 시대의 하얀 건물이 멋지다는 수크레도 안 가기로 했다. 스페인 풍 도시는 지겹고.
그런 남은 건 포토시와 우유니, 포토시 광산 투어는 앤디가 가보라고 했던 것, 우유니는 꼭 가야 하는데고.
일년이나 여행하는데도 왜 이리 바쁠까? 하긴  세계를 다 돌아보는 데는 턱없이 짧은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