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8. 13. 23:15

D+211 071012 뜨거운 것이 너무 좋아, 우유니 투어 셋째날, 볼리비아-칠레 이동

다섯 시 기상.온통 칠흙같은 어둠. 발전기를 돌려야 불을 켤 수 있는데 어젯밤에 끄더니 새벽에 다시 켜 주지는 않는다.
모두 라이트를 켜고 대충 짐을 챙기고 있다. 진짜 춥고, 졸리고, 세수도 못하고 엉망.
어쨌든 출발, 가로등 같은 건 물론 없는 험한 길, 유리창에 성에는 잔뜩 끼고 바깥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해가 뜨기 시작하니 이제 눈이 부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길을 어떻게 운전하는 거지?
올리버가 주정뱅이라 해도 경험이 많은 베테랑 운전사 이니 함부로 자르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6시 반에 간헐천(geyser basin)에 도착. 고도 4950미터. 멀리서도 땅에서 김이 펄펄 올라오는 게 보인다.
차마 가까이 가지는 못한다. 땅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큰일. 수증기에 손을 대면 살이 다 날아간단다.
냄새는 꼭 재래식 화장실 냄새. 유황, 암모니아 냄새.
마그마가 부글부글, 위험한데 가까이 갈 수록 따뜻해 자꾸 옆에 가게 된다.
이런데 빠져서 부상당한 사람은 없는걸까?
으~새벽 공기 너무 추워요.
인간은 문명으로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우리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이 많다.

마그마가 부글부글 끓고 있으니 분명 노천 온천이 있다.
호수 자체가 끓고 있는 것처럼 수증기가 올라화 호수에 뛰어들라는 말은 아니겠지, 했는데 노천 온천은 그 옆에 인공으로 만들어 놓은 작은 풀.
이렇게 춥고 세수도 못했는데 뜨거운 물이라니, 온천 같은 거 즐기지 않지만 이 기회는 놓칠 수 없다.
탈의실 이용로 5B. 돈도 없는데... 마사는 앞자리에서 나는 뒷자리에서 대충 옷 갈아입는다.
예전에는 생각도 못한 일인데 볼테면 봐라 하는 심정. 수영복이 없어 대충 반바지를 입고 뛰어들었다.
와, 너무 따뜻하다. 행복하다. 지난 3일간의 피로가 발끝부터 스르르 빠져나가는 기분.
모두들 난리다. 여기 영원히 있고 싶다는 둥, 떠다니는 테이블에서 밥을 먹고 싶다는 등
노천 온천이 이런 맛이구나, 나중에 기회 되면 또 해야지.

물에 들어갈 때는 계속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조금 있으니 숨이 막히고 힘들다. 아쉽지만 나가야겠다.
나오니 진짜 춥다. 젖은 몸이 찬 공기에 닿으니 더 차갑게 느껴진다. 이 와중에 루이스가 사진 찍어달래서 더 추웠다.
자동차로 가서 대충 물기를 씻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저기 불쌍한 크리스토퍼가 내가 옷 갈아입을 동안 젖은 몸으로 오돌오돌 떨며 기다리고 있다. 으, 정말 추웠겠다.

아침 식사, 노천 온천 옆 바라크 같은데서 카스테라와 젤리를 먹었다.
이제 차는 온천을 뒤로 하고 칠레 국경을 향해 달린다.
달리의 그림을 연상시킨다는 초현실주의적 풍경,  달리가 여기 다녀갔다는 얘기는 아니겠지?
짚차는 먼지나는 길을 달려 마지막 스탑, 라구나 베르데(Laguna verde 초록색 호수)에 닿았다.
아, 이런 푸른빛이 자연에 존재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하늘과 화산과 호수, 완벽하게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런데 너무 춥다. 5000미터의 고도, 바람도 세게 불어 오래오래 호수를 보고 싶은 마음을 날려 보낸다.
쉽게 닿을 수 없고 오랫동안 두고 볼 수 없기에 더 아름다운 곳이다, 우유니 투어의 모든 곳은.

8시반, 이제 국경까지 달리는 일만 남았다. 나만 칠레로 넘어가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우유니로 돌아간다.
-칠레 언제 가는데? 루이스의 말
-지금, 이제 간다니까, 10시라고 표에 써 있어.
-진짜 가는 거야? 우리랑 같이 우유니로 돌아가면 안 돼?
-안 돼, 난 가야할 길이 있어.
-네가 그리울 거야(I'll miss you)
-나도 (Me too) 우리 아르헨티나 가서 다시 만나자.

국경에 도착.
마이 쿠반 가이, 루이스.
4박 5일동안 루이스랑 같이 지내며 서로 의지도 하고  많이 웃고 즐거웠다.
쿠바를 사랑하면서도 미국 시민이 되길 원하는, 민족과 나라와 이데올로기에 대해 생각이 많은 것이 한국인과 비슷해서 더 마음이 잘 통했는지도 모르겠다.
최고의 투어 멤버, 최악의 운전사.
끝까지 유머 감각을 잃지 않은 크리스토퍼, 귀여운 영어 액센트의, 비포 선 셋의 줄리델피를 닮은 아멜리에(혀에 피어싱 한 거 빼놓고), 처음에는 무뚝뚝해 보였지만 활달한 마사, 가끔 엉뚱한 데 기어올라가는 케빈, 그리고 내 쿠바 친구 루이스.
모두 유쾌한 사람들이라 3일동안 즐거웠는데 다시 혼자가 되려니 눈물이 다 난다.
만남도 헤어짐도 다 여행의 일부이고 몇 번 겪었는데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차가 떠났다. 다시 혼자가 되었다.

국경에는 나 말고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맨 먼저 눈을 마주친 두 명과 인사했는데 스웨덴에서 온 베트남, 스웨덴 혼혈 사옹마이는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가방에 김치 같은 거 없냐고 묻는다. 한국 음식 좋아한다고. 어떻게?
국제학교 다녔는데 한국애들이 싸온 음식이 맛있었단다, 김치, 김밥 등등

버스는 10시 반 출발.
볼리비아 안녕.
비포장도로를 10분 정도 달리더니 아스팔트 길로 올라선다. 칠레구나.
2박 3일간, 아니, 포토시-우유니 버스까지 3박 4일동안 비포장길에 시달린 엉덩이도 이제 안정을 찾을 수 있겠다.
오후내내 덜컹거리는 짚차를 타고 우유니로 돌아갈 친구들이 안쓰러웠다.
화산 너머는 볼리비아겠지? 방금 떠나온 볼리비아가 벌써 그립다.
계속 내리막길을 달린다. 5000미터에서 2000미터로 내려가는 중.
칠레쪽 국경 사무소에 도착한 시간이 11시 반, 볼리비아가 코카 생산국이라 짐 검사를 세밀히 하는데 나는 그냥 통과.
그리고 바로 산 페드로 아타카마였다. 햇빛이 강하고 사람들은 반팔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한 시간 전과는 완전 딴 세상, 우리는 어느 별에 갔다온 것일까?
산 페드로 아타카마 거리 풍경, 볼리비아보다는 훨씬 정돈된 모습이다.

론니에 나온 두 군데 호스텔에서 퇴짜를 맞고 florida hostel의 도미토리에 짐을 풀었다. 5000페소(1000칠레페소=1900원).
별로 좋지 않았는데 지쳐서 다른 데 찾아볼 여력이 없었다.
짐 내리자마자 살타 가는 버스를 예약하러 갔다. 표가 빨리 팔려버린다는 얘기를 가이드북에서 보았다.
Geminis 사무실 문 앞에 다음 화요일에 가능하다고 써 있다. 오늘은 금요일, 그럼 너무 늦는다.
들어가니 두 명이 표를 못 구하고 돌아선다.
일요일 가능할까요? 딱 한 장 남았다. 와우! 이런게 혼자  여행하는 장점이다.
그 커플이 돌아보더니 자기네 두 명이라 못샀다고 축하한다고 한다.

여권을 가져오고  ATM 찾아 돈을 뽑고 겨우 마지막 표를 손에 넣었다. 이제 이틀 동안 느긋히 지내면 된다.
호스텔에 돌아와 라파즈에서 산 너구리 라면을 끓여 먹고 우유니 투어 일기를 쓴다.
일기를 쓰다 지쳐 마을도 슬슬 돌아본다.
레스토랑과 투어 회사, 작은 광장, 흙길, 흙벽돌, 오이시스에 세워진 작은 도시. 별 특징은 없다.
저녁은 4000원짜리 셋트 메뉴, 수프, 뽀요. 뽀요는 닭다리 달랑 한 개 나왔다. 1500원으로 닭 1/4마리를 먹을 수 있는 볼리비아가 자꾸 생각난다.
친구들은 우유니에 잘 도착했을까? 가서 투어 사무실을 뒤집어 놓았을까? 그들도 내가 조금은 그리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