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6. 09:46

D+265 071205 멕시코 친구 나차를 다시 만나다.

오늘은 가야겠다.
일주일이나 머문 방 천장 모습을 마지막으로 찍고, 앙헬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여기서 지낸 시간이 무척 즐거웠다고 얘기하니 인터넷 호스텔 예약 사이트에 평을 잘 써달라는 부탁을 한다.
-응, 최고의 평을 써줄테니 걱정하지 마.
B&B호스텔이라니 참 특징 없는 이름이다. 그래도, 집처럼 느껴졌던 곳이니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골목을 돌아나와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멘 배낭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

라파즈에서 만났던 멕시코 친구 나차가 멕시코 시티에 오면 꼭 연락을 하라고 했다.
몇 번 집으로 전화를 걸어봤는데 계속 연락이 안 되다가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전화해야겠다 싶어 걸으니 나차가 있다.
-멕시코 시티에 온 지 일주일 됐어요.
-그동안 왜 연락을 안 한 거야? 멕시코 시티에 왔으면 우리집에 머물렀어야지.
-했는데 잘 연결이 안 됐네요.
나는 그냥 통화만 하려 했는데 만나자고11시에 Suprema Corte 앞으로 오라고 한다.
Suprema Corte? 지도를 찾아보니 쏘깔로 옆에 있는 대법원이다. 그 앞이 이 곳 사람들의 약속장소일까?

우선 TAPO(Terminal Oriente)터미널에 가서 와하까(Oaxaca)가는 버스표를 사고 배낭을 맡기고 오기로 했다.
TAPO터미널은 지하철 San Lazaro 역과 바로 연결된다.
와하까 가는 버스표 가격은 700페소, 400페소짜리가 있었는데 좀 둘러보니 290페소짜리가 있다. 출발 시간은 밤 열 한 시.
그런데 배낭을 맡기려고 보니 100페소(9000원)나 받는다. 말도 안 되게 비싼 가격이다.
결국 무거운 배낭을 다시 메고 호스텔로 돌아와 배낭을 맡기고 대법원에 도착하니 11시 반이었다.
대법원 앞에선 무슨 일인지 데모가 한창이다. 나차, 나차가 여기 어딘가에 있단 말인데...
앗, 저기, 나의 멕시코 친구 나차가 있다. 라파즈에서 페나를 들으러 가서 만났던 엄마 같은 나차.
젋었을 때 우상이었던 체 게바라가 죽은 곳을 찾아 볼리비아에 왔다는, 나와 헤어질 때 눈물을 흘렸던 나차다.
볼리비아에서 나차를 만난 첫날 이야기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둘째날 이야기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나이 지긋한 분들이 데모를 하고 있는 게 신기하다.
체 게바라 티셔츠를 입고 있는 나차와 재회했다. 무척이나 반갑다.
왜 자기네 집에 와서 자지 않았냐고 거의 야단을 치는 나차.
데모를 하고 있는 분들은 68년에 같이 학생운동을 했던 모임. 어떤 성직자(정부 관리였던가?)가 아동 성추행을 저지르고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그것에 항의 하고 있는 것.
4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열정을 잊지 않고 있는 대단한 분들이다.
이 분은 66세라는데 거의 50세처럼 보인다. 역시 생각이 젊으면 외모도 젊다.
Arthuro라는 아저씨, 10년 전 동생이 의문사를 당한 후,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수염을 안 자르기로 결심했는데 지금은 그 수염이 허리 아래까지 닿는다고. 아침마다 딸을 자전거로 등교시키는 멋진 분이다.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처음으로 정권교체(이전 정부는 1929년부터 쭉 지속되어 왔단다)를 이루었는데 데모의 자유는 확실히 보장되어 있는 것 같다.

데모는 계속되었는데 나차와 다른 친구 두 명과 나는 점심을 먹으러 갔다.
진짜 레스토랑에서 시킨 엔칠라다.
나차는 내가 자기집에 안 머물러서 sad하고 angry하단다. 200페소짜리 shared bathroom에서 머물렀다고 하자 도대체 왜 그랬냔
다. 집에 사촌도 와 있고 미국친구도 머물고 있다고. 
그런게 보편적인 문화인지 나차가 그런 성격인지 잘 모르겠지만 며칠 신세져도 되겠다.
하지만 난 오늘 멕시코 시티를 떠나야 한다.
후식으로는 엄청난 카푸치노. 나차가 자기가 사는 거니 마음껏 먹으란다.

이제는 헤어질 시간.
-우리 언제 다시 만날지 몰라도 영원히 안 잊을께요. 이 곳에 다시 오게 되면 꼭 나차 집에서 머물구요.
-언제 다시? 나 죽은 다음에?
-무슨 그런 소리를...

나차와 헤어지고 쏘깔로를 걷는데 점점 쓸쓸해진다. 여행 중 만났던 짧지만 고마운 인연들을 어떻게 기억하며 살아야 할까?
발닿는 대로 들어간 작은 미술관의 조각.
특이한 그림.

오늘 국립궁전(Palacio Nacional)이 문을 열었기에 들어가보았다.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곳이다.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가 있는 계단에는 새로 페인트칠을 하는지 못 올라가게 해 놓았다. 자세히 볼 수 없어서 아쉽다.
그 외에도 궁전 여기 저기 공사중인 곳이 많다. 아까 같이 식사했던 역사학자의 말로는 70년만에 정권이 바뀌니 이것 저것 고칠 것이 많을 수 밖에 없단다.
죽음의 날의 기념품인 듯. 우리나라로 치면 청와대쯤 될텐데 이런 것이 있다니 정말 이상하다.
더 이상한 것도 있네. 이 나라는 볼수록 참 신기하다.

버스 시간까지 시간이 남길래 아까 나차가 얘기했던 메모리얼 홀에 가보기로 했다.
가르쳐준대로 Tlatelolco역에 내려 찾아가는데 관광지도 아니고 도시 외곽이라 좀 어려웠다.
물어물어 찾아가니 엄청나게 큰 문화센터 같은 곳이었다.
아, 있다. Memorial del 68, 5시 반이 입장 마감인데 도착한 시각이 5시 35분이었다.
-저기, 제 친구가 여기 꼭 가보라고 했거든요.
불쌍한 표정을 지으니 들여보내준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68 혁명은 전세계를 휩쓸없고 대서양을 건너 멕시코에도 혁명 정신을 일깨웠던 것.
굉장히 잘 꾸며진 공간이다. 이런 공간도 정권 교체 이후에나 가능했을 것이다.
그 당시의 사진.
68년에 멕시코는 올림픽을 개최하기로 되어 있었다. 일당 독재에 반대해 8월에는 오십만명이 쏘깔로에 모여 데모를 했고, 올림픽 개최가 얼마 안 남은 10월에 이 곳 Tlatelolco에서 데모가 시작되었는데 그 때 군사가 투입되어 몇 백명이 죽었다. 
경찰에 끌려간 여대생들.
마음이 숙연해진다. 어느 나라에사 아픈 역사는 있게 마련, 그래도 그것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 있기에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차는 어디에 있는걸까?
앗, 발견, 나의 친구 나차가 저기 있다.
젊었을 때는 정말 미인이었다. 많이 망가지셨구나, 나차...
나오면서 Muchas gracias, 인사를 하고 '저기 내 친구  사진이 있어요'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단순히 표면만 보고 지나가는 관광객이 아니라 그들의 역사, 삶을 조금이나마 엿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문화 센터 옆의 폐허, 이것도 무슨 유적일텐데...

호스텔에 돌아와 아침에 했던 작별 인사를 다시 하고 터미널로 갔다.
버스에 타기 전에 짐을 따로 부쳐야 하는데 싼 버스표라 그런지 줄 선 사람이 모두 현지인이다.
무슨 짐을 그렇게 많이 싣는지 냄비를 백 개쯤 싣는 사람, 보따리를 바리바리 싣는 사람, 줄이 길어 무척 지루했다.
짐이 실리는 것을 눈으로 확인 못하니 불안하기도 하고.
멕시코에서 처음 타는 장거리 버스인데 남미보다 훨씬 시설이 안 좋다. 화장실도 없을 뿐더러 밥도 안 주고 춥기까지 했다.
버스는 새벽 6시에 와하까에 닿았다. 다행히 내 배낭은 무사히 실려 있었다.

*멕시코시티 호스텔, Bed & Breakfast Mexico, Durango 145esq. Tonaia, Colonia Roma. 싱글룸 200페소.
혹시 가시게 되면 앙헬에게 안부를 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