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8. 09:45

D+280 071220 리조트 도시 깐꾼에 가다, 뚤름-깐꾼 이동

어제 아침은 또띠야에 계란 후라이더니 오늘 아침은 팬케잌이다. 매일매일 메뉴가 바뀌는 걸까? 그것도 나쁘지 않다.
짐을 싸서 나왔다. 알베르또가 오늘 쎄노떼(Cenote)안 가겠냐고 물어본다. 쎄노떼는 물이 차 있는 동굴 같은 것으로 스노클링과 다이빙까지 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라는데 나는 시간이 없다.
-아니, 난 지금 가야돼, 내일 멕시코를 떠나야 하거든.
옆에서 알베르또의 엄마가 뭐라고 얘기한다. 나를 잡으라는 건가?
하지만 이런 잠깐 왔다가 떠나는 인연들에 알베르또는 익숙한 듯 잘 가라고 한다.
사진 한 방 찍어주고. 어글리하기는 뭐 귀엽게 생겼구만.
알베르또가 좋은 여자 만나서 행복하길 바랄 뿐.

깐꾼 가는 버스는 10시에 왔는데 자리 없다고 안 태워준다. 출발을 아래쪽 어디에선가 하는 모양인데 짐 싣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다 타버려서 자리가 없다.
차가 가버리자 큰 배낭을 멘 백패커 네 명만 못 타서 다음 차를 기다린다.
같이 기다리던 여자애는 유타주에서 왔다는데 멕시코 중독으로 매년 돌아온단다. 그 애 맘을 나도 이해할 수 있다.
30분 기다린 후 다음 버스가 왔는데 역시 자리가 없다. 결국 서서 가게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그 버스를 탈 것을...
한 시간쯤 가니 쁠라야 델 까르멘(Playa del Carmen)에서 사람들이 많이 내린다. 이 쪽이 더 유명한 리조트 타운이다.
버스는 오후 두 시쯤 깐꾼에 닿았다. 여태껏 거쳐 온 곳과는 비교도 안 되고 크고 번잡한 도시이다.
스페인어권을 여행하며 계속 웃음나게 만들었던 신발 가게, 자빠떼리아.

터미널을 나오니 어디로 가야할 지 정말 모르겠다. 시골에서 갓 올라온 듯 얼떨떨하다.
론니에 나온 Mexican hostel에 가려 했는데 어떤 삐끼 아저씨가 이끄는 대로 그 앞에 있는 다른 작은 호스텔에 갔다.
이층 침대가 2개 있는 옥탑방이었는데 아무도 없길래 100페소에 묵기로 했다.

깐꾼은 1970년 리조트 타운을 만들고자 하는 멕시코 투어리즘의 노력으로 생긴 계획 도시.
이 도시의 존재 이유는 오로지 휴가를 즐기러 오는 관광객을 위한 것.
도시는 해변을 배경으로 호텔, 쇼핑 몰 등 리조트 타운이 있는 Zona Hotelera와 터미널, 싼 숙소, 레스토랑등이 몰려 있는 깐꾼 시내로  나뉘어 있다. 내가 있는 곳은 시내, 좀 쉬었다가 해변에 잠깐 가봐야겠다.
이 때 나타난 젊은 애가 데이빗, 지금 영하 20도인 캐나다에서 막 도착했고 내일 가족들이 도착하면 같이 메리다 쪽의 리조트에 갈 거란다. 추위를 벗어나 휴가 첫 날이라는 것에 많이 흥분해 있었다.
내가 해변이 있다는 Hostelier zona쪽으로 버스 타고 갈 거라고 했더니 같이 가잔다.
나갈 준비하고 있는데 어떤 뚱뚱한 아저씨가 또 들어온다. 으, 조용히 혼자 지낼 것을 기대했건만 너무 큰 욕심이었다.
아저씨는 이층 침대 사다리를 못 올라가겠다며 나보고 위에서 자는 게 어떠냐고 부탁한다. 하긴 저런 아저씨가 내 윗층에서 자고 있다고 생각하면 침대 무너질까봐 불안해서 잠이 잘 안 올 것 같다.
-그러면 뭐 줄 건데요?
-키스해줄께.
이런, 됐거든요. 주섬주섬 짐을 2층으로 옮겼다.

버스는 시내를 벗어나 호수를 끼고 한참을 달린다.
고급 호텔, 국제적 브랜드의 간판이 빛나는 쇼핑가를 보니 여기가 멕시코가 아닌 것만 같다.
반도 맨 끝의 해변에서 내렸다. 다른 곳은 호텔에 가려 해변이 안 보였는데 여기는 바로 바다가 가까이 있다.
(Kuikulkan 거리를 따라 호텔이 늘어서 있다. 타원 안이 내가 갔던 해변)
와, 여기도 물 색깔 예술이다, 모래도 좋고.
나는 발만 담그는데 데이빗은 당장 물에 뛰어든다.

모래 사장에 앉아있는데 누가 와서 아는 척을 한다. 누구신지...?
어, 어제 같이 곱창 볶음을 먹고 깐꾼으로 떠났던 삼모자의 큰 아들이다. 엄마는 어디?
엄마와 동생도 다가온다. 여기서 다시 만나니 무척 반갑다.
깐꾼의 비치는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지만 대부분 고급 호텔의 로비를 통과해야 한다. 지나가면 막는 사람은 없겠지만 사실 좀 뻘쭘하니 맨 끝에 있는 이 비치에 보통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것이다. 공영 주차장이 있는 비치도 여기 뿐이라고.

자, 신기한 인연이니 사진 한 장 같이 찍어야 한다. 데이빗과 주변의 어떤 사람에게 각각 사진기를 맡겼다.
렌즈 뚜껑 고장난 내 카메라는 누구에게 부탁할 때마다 말썽이다.
엄마와 두 아들과 나, 모두 행복하기를...
멕시코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니 좀 서글프다. 이제 미국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결국 돌아가기 위해 시작한 여행이지만 어떤 마음으로 돌아가야 할 지, 돌아가고 싶은 지 아직 잘 모르겠다.
모래 사장에 앉아 있는데 아까 큰 아들이 맥주 한 병을 가져다 준다. 정 많은 나라 멕시코 답다.
누가 또 와서 아는 척을 한다. 누구...? 아까 깐꾼으로 오는 버스를 같이 타고 온 아르헨티나 남자애였다.
역시 고급 호텔에 묵을 수 없는 사람들은 이 퍼블릭 비치에서 모인다. 

해가 지자 추워져 시내로 돌아왔다.  해수욕을 한 데이빗이 씻기를 기다려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갔다.
레스토랑은 비싸고 어느 구석에서 퀘사딜라 집을 찾아냈다. 멕시코 시티에서의 기억을 살려 Queso와 Rajas를 시켰는데 그 때만큼은 맛이 없었다.
그래도 멕시코 마지막 식사가 로컬 레스토랑의 퀘사딜라여서 괜찮다.
데이빗은 파티를 해야 한다고 펍을 찾아 떠났다. 서양 애들은 휴가를 즐기기 위해 이 곳에 온다.
그들이 쓰고 가는 돈이 멕시코 사람들에게 돌아가면 좋으련만 결국은 다국적 자본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 아무래도 여행을 하며 남의 나라 일에 근심이 많아진 것 같다.
호스텔에 돌아와 티비에서 하는 CSI Miami(다음 목적지다.)를 보고 방으로 돌아오니 나밖에 없다. 모두 파티하러 나갔나보다.

아름다운 자연과 맛있는 음식과 친절한 사람들의 나라, 멕시코.
언젠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그 때 이곳은 , 나는 얼마나 변해 있을까?
멕시코의 마지막 밤이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