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 21. 09:22

D+308 080117 MIT, SSSS, 보스턴-버클리 이동

라커에 짐을 맡기는데 3불, 이래저래 비싼 호스텔이다.
미국 동부에서 마지막날, 하버드 다리를 건너 MIT에 가보고 나머지 시간은 그냥 시내를 걸으며 보내기로 했다.
어제보다는 날씨가 따뜻했다.
촘촘히 붙어있는 집, 우리나라로 치면 연립주택쯤 될텐데 이것도 멋있어 보이는 건 무슨 심리?
오늘도 유유히 흐르는 찰스 강.
하버드 브릿지(Harvard Bridge)를 건너면 MIT가 나오고 3km쯤 더 가면 하버드가 나온다. 나는 MIT까지만 갈 예정.
다리 중간의 그래피티, 지옥까지 반쯤 왔다구? 꿈의 대학 MIT인데 막상 거기 다니는 학생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나보다.
캠퍼스 안내도.
어느 대학에나 한 개 씩 있는 그리스 양식 기둥의 건물, 뭐하는 곳일까?
안내해 주는 사람도 없고 딱히 가보고 싶은 곳도 없으니 재미가 없다.
하버드까지 가볼까, 그런데 너무 멀다. 그냥 지난번 예일대를 속속들이 돌아다녀 본 걸로 만족하고 이만 철수해야겠다.
디리를 건너 돌아가는 길.
역시, 이런 집에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이런 거리가 미국 도시의 전통적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늘도 점심은 수프, 수프를 시키면 빵이나 크래커를 같이 줘서 충분히 한 끼 식사가 된다.
전통과 현대가 어울린 도시 풍경,
이제 따뜻한 서쪽으로 이동할 시간이다.

호스텔에서 짐을 찾아 로간 공항 가는 Silver line을 타러 갔다. 실버 라인이라기에 지하철인가 했더니 그냥 버스다.
그런데 이 버스만 다니는 길인지 터널과 도로를 통과해 정차하는 일도 없이 금방 공항에 닿았다. 
짐을 체크인하고 콘트롤을 통과하는데 시카고 공항에서처럼 또 나를 따로 불러 샅샅이 몸수색을 한다.  
지난번 비행기표에도 SSSS가 찍혀 있었는데 이번 비행기표에도 찍혀있고 형광팬으로 하일라이트까지 해뒀다.
검사하는 여경이 전에도 몸수색을 받은 적이 있냐고 묻는다.
-지난 번, 시카고에서 뉴욕 갈 때도 그랬어요, 왜 그러는 거죠?
-이 SSSS 때문에 그래요.
-난 아무 것도 잘못한 게 없어요? 왜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요?
-여기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요. 항공사에 한 번 연락해 보세요.
짐의 먼지까지 면봉으로 채취해 어떤 기계에 넣고 체크한다. 일을 철저히 하고 있는 건 알겠는데 왜 나한테 그러는지 정말 화가 났다.
 
시카고에서 뉴욕 체크인할 때 비행기편이 취소되어 잠깐 당황한 모습을 보였는데 그 때 담당자가 SSSS를 찍고 그 다음부터 어메리칸 에어라인을 이용할 때는 저절로 찍혀 나오는 것 같다.
거의 일년간 여행하면서 이렇게 모욕감을 느낀 적은 처음이다. 나는 아무것도 잘못한 일이 없는데 왜 범죄자 취급을 받고 남들 앞에서 몸수색을 당해야 하는가, 단지 개인적인 느낌만으로 낙인을 찍고 그게 이후까지 이어진다는 게 말이 되는가?
나는 보잘것 없는 나라에서 온, 이 나라를 방문하는 수백만명 중 한 명일 뿐이다. 거대 조직이 개인에게 권력을 휘두르는 건 아무 일도 아니다. 힘없는 한 사람은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이유도 모른채 모욕을 온몸으로 견뎌야 한다.
답답하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게,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숨이 막힌다.

마음을 추스리고 단숨에 한 장짜리 항의 서한을 썼다. 일년간 여행하면 이렇게 shameful한 순간은 처음이라고, 나는 당신네 나라에서 잘못한 일이 하나도 없다고. 버클리 친구 집에 가면 당장 이메일로 어메리칸 에어라인에 보내야겠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항의 이메일을 보내도 시원스런 대답을 얻지는 못할 것이며 내가 느낀 모욕감도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비행기는 6시간만에 샌프란시스코에 닿았다. 일년 만에 보는 윤이 공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클리까지 차를 달려 윤이 끓여준 오뎅국에 쌀밥을 먹으니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SSSS(Secondary Security Screening Selection)은 특별관리대상의 승객을 말한다. 정확한 기준은 공개되어 있지 않으나 편도 티켓을 갖고 있거나 현금으로 비행기표를 산 경우, 바로 전날 비행기표를 구입한 경우들이 해당된다고 알려져 있지 않다.
나는 그 중 어느 것에도 해당 안 된다. 랜덤으로 선정된다는 설명도 있으나 절대 그렇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메리칸 에어라인은 내 항의 이메일에 선정 기준은 밝힐 수 없고 안전을 위한 것이니 협조를 바란다는 의례적인 답변을 보내왔다. 이후 어메리칸 에어라인을 탈 기회는 없었고 미국내 비행기를 탈 때도 한국으로 돌아올 때도 SSSS가 찍히진 않았다.
어쨌든 나는 다시는 어메리칸 에어라인을 이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복수다. 그리고 시카고 공항에서 불친절했던 그 직원, 나에게 SSSS를 찍은 그 직원을 영원히 저주할 것이다. 퍽킹 가이, 퍽킹 어메리카, 퍽퍽퍽퍽!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나같은 일을 겪었을 수많은 힘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