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8. 14. 14:06

둘째날-5 지우펀의 밤

예류에서 지우펀으로 가려면 지룽(基隆)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버스는 시내 버스 같은데 끊임없이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 명절에 모두들 어디 가는 걸까?
나중에는 완전 만원버스처럼 되어 버렸다. 주변은 시골길에서 시가지로 변해 어딘가에서 내리긴 내려아 하는 것 같은데...
대충 사람들 많이 내리는 데 내렸더니 여기가 아닌가벼.
길 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모두들 고개를 절레절레, 길을 건너 경찰서에 가니 회차점까지 가야 한다고 친절한 경찰이 종이에 한자로 적어준다.
비는 계속 오고 습기에 얼룩덜룩해진 건물들은 음울하게 보인다.
종이를 들고 물어물어 한참이나 걸어 회차점이라는 곳에 도착.
바로 여기, 모든 버스가 여기서 회차를 하는 것 같다. 아까 그 버스를 타고 끝까지 갔으면 됐을텐데 괜히 고생하고 있다.
진과스(金石) 가는 버스는 한참이나 걸려서 왔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두 여학생에게 이 버스를 타면 되냐고 물어보니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버스는 또 꼬불꼬불 산길을 달리기 시작한다. 누가 대만에 대해 물으면 산으로 이루어진 곳이라고 대답하고 싶은 심정이다.
버스에 승객이 나와 그 여학생 둘뿐이었는데 얼마 있다가 둘이 내린다. 나는? 더 가야된단다.
이제 나와 기사 아저씨뿐. 이거 제대로 가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버스가 점점 언덕을 올라가고 길은 좁아지는데 유리창에는 수증기가 서려 잘 보이지 않고...
점점 차가 천천히 간다 싶더니 앞뒤로 차가 꽉꽉 막혀 있다. 여기가 지우펀일까?
기사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여기서 내리는 게 낫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내려보니 이건 단풍철의 설악산 주차장을 보는 것 같다, 안 가봤지만.
길은 2차선인데 길가에는 주차하려는 차, 골목으로 들어가려는 차, 길을 건너려는 사람, 차를 유도하는 사람, 정말 복잡하다.
음, 그러니까 여기가 지우펀은 맞는 것 같다. 설날 연휴에 놀러온 대만 사람들이 가득한 지우펀 말이다.
그런데 여기가 왜 유명하다고?
이 풍경 때문인가?
19세기 말 금광이 발견되면서 발달된 도시, 요즘은 급경사에 면한 멋진 풍경으로 관광지가 되었다는데, 뭐 별로.
산비탈에 면한 마을은 보기에는 좋지만 올라다니기는 어렵다.
미끄러운 돌계단을 올라 숙소를 찾으러 나섰는데...
방이 없다. 민박이라고 씌여진 집을 몇 군데 들러봤는데 지금이 연휴라 이미 다 차버렸단다.
비는 더 세차게, 날은 어둑어둑, 새로산, 방수라고 알고 있던 컬럼비아 신발은 이미 다 젖어버렸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떠오르는 불빛,
허름하니 왠지 방이 남아있을 것 같다. 역시 손짓 발짓으로 할아버지가 방이 있다고 따라 오란다.
차가운 방바닥에 달랑 매트리스 하나, 그래도 남아있는 게 어디냐
남들은 멋진 민박집에서 묵던데 1000원(4만원)을 주고 이런 방에서 자야 하는 현실이 좀 슬프긴 하다. 
배낭을 내려놓고 잘 곳을 구하자 아까보다는 좀 멋있어 보이는 마을 풍경.
아, 이런 붉은 등이 달린 언덕길들이 유명한 거였지.
뭐 그저 그렇구만.
이미 마음은 삐뚤어져 버렸다. 우산을 쓰고 스쳐 지나가기만 어렵고 돌계단은 왜 이리 미끄러운지.
양쪽에는 음식점과 기념품 가게. 무척 춥고 축축해서 뜨거운 게 먹고 싶다.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
따뜻하고 달콤한 것,
따뜻하고 짭짤한 것.
돌아오는데 길을 좀 헤멨다. 성진민박, 그래도 돌아갈 곳이 있어서 다행.

자려고 누웠는데 어찌나 춥고 축축한지, 이 방에서 따뜻하고 습기가 없는 것은 내 몸 하나 뿐인 것 같다.
배낭에 있는 옷 모두를 꺼내 입고 체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최대한 웅크리고 누워있으니 지금 뭐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음...집에 가고 싶기도 하고...타이완, 다시 오고 싶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