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 24. 22:17

D+75 070529 tue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

더블린에서 제일 유명한 것은 아일랜드에서 최고 명문, 트리니티 칼리지, 그리고 그 안에 보관되어 있는 켈스 서(Book of Kells).
자, 이제 보러 간다.
리피 강을 건너간다. 더블린의 볼 만한 것들은 모두 걸어갈 만한 거리에 있어서 좋다.
열 시 반에 투어가 시작하는데 조금 일찍 도착. 40분마다 투어가 있고 켈스 서만 보는데 8유로, 가이드 투어가 10유로니 이쪽이 훨씬 낫다.
이 곳 저 곳 둘러보며 기다린다. 1592년도에 세워진 대학이라는데 이 건물도 그렇게 오래된 걸까?
수업마다 좌석이 정해져 있다. 대출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 같음.
관광객도 많고 케임브리지보다 좀더 개방적인 분위기랄까,그렇다.
10시 30분이 되자 어떤 잘 생긴 청년이 나타나 투어 할 사람들 오라고 부른다.
날은 맑은데 긴 우산을 들고, 선글라스를 끼고 가방에 물병을 넣고 이 학교 학생이라고 자기를 소개한다.
유머러스하게 학교의 역사와 건축 등에 대해 설명하는데 다 못 알아들어 웃지는 못했어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흐뭇~
따라가며 보니 케임브리지보다는 훨씬 작고 우리나라 대학 같이 옹기종기 건물이 모여있다.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곳.
켈스 서 보러가는 길,
Old Library, 이 안에 있다.
줄지어 들어간다.
안에서는 물론 사진을 찍을 수 없다.
9세기, 그러니까 1200년 전에 스코틀랜드 수도승들이 양피지에 성경을 필사해 놓은 것.
680페이지의 책을 1953년에 네 권으로 다시 제본했다는데 두 권이 펼쳐진 채 유리 안에 전시되어 있었다.
글자 하나하나가 다 아름다운 그림이고 중간에 그려놓은 그림도 참 아름다웠다.
그 시대 이걸 손으로 하나하나 그려서 책을 만든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작업했을까? 얼마큼 큰 신앙심을 가지고 했을까?
사람의 힘이란 게 참 위대하다는 걸 다시 새삼 느꼈다. 1200년이 지나도록 이토록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이 책 외에도 그 당시 책을 만드는 방법이나 색깔을 내는 법 등, 책과 관련된 전시도 볼 만 했다.
윗층의 Long room 이라는 곳은 영화에 나오는 옛날 도서관, 꿈의 도서관, 바로 그 이미지를 눈 앞에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었다.
길이가 65미터 이고 20만권의 문서와 옛날 책이 보관되어 있단다.
이런 데서 읽을 만한 책을 발견할 수는 없겠지만 마음껏 돌아다니며 책을 꺼내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투어는 끝났다. 이런 가이드 투어를 선택할 때 비용이며 언어 문제 등을 걱정하지만 결국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것 같다.
대학 풍경.
점심 시간이라 학생들이 나와 담소를 나누고 있다. 갑자기 오래전 대학생활이 그리워진다.
트리니티 칼리지를 나와 국립미술관에 갔다.
미술관 입구.
우선 배고파서 미술관 레스토랑에서 타이 치킨 커리로 점심식사. 13유로, 좀 비싸지만 하루에 한 끼는 제대로 먹어줘야 한다.
저 아래가 식당.
나는 여기 있지요.
국립 미술관이니 물론 공짜이고, 카라바조며 렘브란트며 유명한 작가의 그림도 있었지만 아일랜드 화가들의 그림이 재밌었다.
어디 곳에 가나 그 나름의 예술이 있고 거기까지 갔으면 그걸 보고와야 하지 않나 싶다.

초상화 갤러리에 들어갔더니 직원 아저씨가 반갑게 말을 건다.
-어디서 왔어요?
-한국이요.
-아, 거기 HOT 란 그룹이 있지요? 토니 안이라는 멤버도 있고.
-에? 그걸 어떻게 아세요? HOT 를 좋아하세요?
-좋아하죠, 그리고 토니안은 나랑 이름이 같아요. 내 이름이 안토니오거든요.
안토니오? 토니...안?
자기 이름이 안토니오라고 했더니 어떤 한국 사람이 한국의 유명한 가수랑 이름이 같다고 얘기해줬다는 것이다.
재밌는 아저씨다. 아일랜드 사람이 유쾌하다고 하더니 진짜 그렇다는 걸 처음 느꼈다. 만난 김에 궁금한 거나 물어보자.
-모든 표지판이 영어와 아이리쉬로 되어 있는데 정말 두 가지 언어를 사용하나요?
-아이리쉬는 거의 안 쓰죠. 나도 학교에서 배워서 조금 아는 정도. 하지만 뉴스도 두 가지 말로 하고 아이리쉬만 쓰는 방송도 있어요. 내 이름이 Antonio Quilty 인데 이 Quilty 도 영어화한 이름이에요. 원래 아이리쉬는 다르죠.
-더블린에는 외국 사람이 무척 많은 것 같은데요.
-일하러 온 사람들이 많아요. 폴란드에서는 한시간에 2유로를 버는데 여기서는 8유로를 벌 수 있으니 많이 오죠.
어쩐지, 거리를 걷다 보면 영어로 말하는 소리는 거의 들을 수 없고 폴란드 상점이니 폴란드로 전화하기, 폴란드 행 비행기니 하는 광고가 많다. 아일랜드 경제가 not so bad 라니 정말 그런 것 같다.
더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으나 아저씨는 근무 중이라 유쾌한 아이리쉬 아저씨, 안녕~하고 나왔다.

다시 트리니티 대학 앞으로 돌아와 Eoson 이라는 큰 서점에 들어갔다.
지하에서 사고 싶었던 케임브리지 문법 책을 발견, 영어를 쓰다보면 궁금한 게 많아서 이 책이 하나 있었으면 했다.
20유로, 영국보다 조금 싼 것 같기도 하고 내일이면 배낭도 내려놓을 수 있어서 하나 사기로 했다.
계산대를 지키던 친절해 보이는 아저씨가 학생이냐고 묻는다, 물론이죠. 여기 랭귀지 스쿨 학생? 그건 아닌데...
어쨌든 학생증 보여달라고 하더니 할인 2유로나 해준다. 우와, 역시 대학 앞 서점이 좋긴 좋다.
친절한 아이리쉬 아저씨 두 명 때문에 기분이 좋아지고, 거기다 날씨까지 좋아 좀 걷기로 했다.
더블린 성 표지판이 있는데,
이 안이라는 얘기다. 별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안 드네.
그저 걷다보니 눈앞에 나타난 저 첨탑은,
크라이스트 처치 성당.
1169년도에 세워졌다고?
그 이후 복원 사업을 많이 했다고. 북쪽 벽이 기울어져 있다는데 어디가 북쪽인지 알 수가 없다.
이 나라 앰뷸런스는 노란 색이군.
걷다 보니 너무 많이 와버렸다. 돌아가는 길은 강을 따라서.
사이버틱해 보이는 트램. 보통 전차는 오래전부터 있던 것이어서 낡은 게 많은데 여기는 현대적이다.
좁은 길도 잘 다니는 전차. 우린 왜 이렇게 좋은 교통 수단을 다 없애버린 걸까? 종로, 세종로에 전차가 다니면 얼마나 재밌을까?
교통량이 문제가 아니다. 다양한 대중교통 수단이 있어야 자가용 이용도 줄어들 것이다.
더블린도 해가 늦게 지기는 마찬가지,
엠피 쓰리 들으며 아까 서점에서 산 책 보기(에딘버러에서 고민하다 못 산 McCallsmith의 책을 여기 와서 샀다).
오늘 만난 세 명의 아이리쉬 맨(한 명은 젊고 두 명은 젊지 않은) 때문에 아일랜드를 아주 좋아하기로 맘 먹고 있는 중...